조선 현종 4년(1663)에 건립된 의성김씨 지촌 김방걸의 종택이다. 1930년 작은 사랑채와 문간채가 화재를 입었다.
1989년 임하댐 건설로 현 위치로 옮겼다. 지촌은 현종 1년(1660)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과 대사성을 역임했으며
관직에서 물러나 지산서당을 지어 독서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전체적인 평면은 입구자형으로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 위에 각주를 세웠다. 사랑채는 내중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있는데, 모두 통간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별묘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와가로 지어졌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가 맞배집으로
내부는 우물마루 바닥이다. 이집은 안동지방 상류계층 가옥의 여러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정겨운 밥상과 마루..지례의 활동 중 많은 부분이 숙박에 머무르는 듯해 안타깝다. 물론 고택체험도 좋긴하지만 ..





이쪽이 정문인 것 같다. 옆으로 들어와 이쪽으로 나오면 산책로를 따라 한바퀴 돌 수 있어서 괜찮다.


1989년 임하댐 건설로 현 위치로 옮겼다. 지촌은 현종 1년(1660)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과 대사성을 역임했으며
관직에서 물러나 지산서당을 지어 독서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전체적인 평면은 입구자형으로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 위에 각주를 세웠다. 사랑채는 내중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있는데, 모두 통간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별묘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와가로 지어졌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가 맞배집으로
내부는 우물마루 바닥이다. 이집은 안동지방 상류계층 가옥의 여러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정겨운 밥상과 마루..지례의 활동 중 많은 부분이 숙박에 머무르는 듯해 안타깝다. 물론 고택체험도 좋긴하지만 ..





이쪽이 정문인 것 같다. 옆으로 들어와 이쪽으로 나오면 산책로를 따라 한바퀴 돌 수 있어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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