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 류진걸이 지은 집이다. 류진걸의 호로써 당호를 삼았다. 수애당은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향인 대문채를 들어서면 담장으로 구획된 장방형의 행랑마당이 나타나며, 담장 사이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일자형의 정침과 기역자형의 고방채가 안마당을 두고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문채는 외양간과 창고를 두고 통칸 온돌방을 두었다. 고방채는 12칸 규모의 건물로 창고, 고방, 화장실
부엌, 온돌방이 연결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인 팔작기와 집이다. 좌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 대청, 중간방, 사랑방이 연접되어 있으며 안방 뒤에는 우물마루로 된 방을 두었다. 목재는 모두
춘양목으로 지어져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조선 말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안내문에서 발췌-
임하댐으로 인해 옮겨진 것들이 왜이리 많은지...옮겨져서 그런지 마을 자체는 굉장히 깔끔한데
좀 어색한 감이 있긴 하다. 길은 새길인데 건물만 오래됐으니..ㅡㅡㅋ
아쉽게도 문은 열려있지 않아서 안에는 못들어가 봤고 밖에서만 봤다. 지금은 각종 문화행사와
숙박을 주로하는 듯 한데 고택숙박임에도 가격이 적당한듯하다. 인원은 한방에 그렇게 많이 수용할 수 있진
않은 것 같지만...나중에 전원생활이란 잡지에서 봤는데 수애당 안주인 분은 외지분으로서 들어와서
처음에 적응하기가 힘드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다쳤을때 마을분들이 모두 달려와 걱정해 주셨을때
이해가 되셨다고 하며 수애당 생활에 대한 인터뷰가 나왔는데 보며 다음엔 한번 묵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간문에 달리 북어..무슨 뜻일려나..


남향인 대문채를 들어서면 담장으로 구획된 장방형의 행랑마당이 나타나며, 담장 사이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일자형의 정침과 기역자형의 고방채가 안마당을 두고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문채는 외양간과 창고를 두고 통칸 온돌방을 두었다. 고방채는 12칸 규모의 건물로 창고, 고방, 화장실
부엌, 온돌방이 연결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인 팔작기와 집이다. 좌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 대청, 중간방, 사랑방이 연접되어 있으며 안방 뒤에는 우물마루로 된 방을 두었다. 목재는 모두
춘양목으로 지어져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조선 말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안내문에서 발췌-
임하댐으로 인해 옮겨진 것들이 왜이리 많은지...옮겨져서 그런지 마을 자체는 굉장히 깔끔한데
좀 어색한 감이 있긴 하다. 길은 새길인데 건물만 오래됐으니..ㅡㅡㅋ
아쉽게도 문은 열려있지 않아서 안에는 못들어가 봤고 밖에서만 봤다. 지금은 각종 문화행사와
숙박을 주로하는 듯 한데 고택숙박임에도 가격이 적당한듯하다. 인원은 한방에 그렇게 많이 수용할 수 있진
않은 것 같지만...나중에 전원생활이란 잡지에서 봤는데 수애당 안주인 분은 외지분으로서 들어와서
처음에 적응하기가 힘드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다쳤을때 마을분들이 모두 달려와 걱정해 주셨을때
이해가 되셨다고 하며 수애당 생활에 대한 인터뷰가 나왔는데 보며 다음엔 한번 묵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간문에 달리 북어..무슨 뜻일려나..


덧글
수애당은 제친구집이자 주인이 저의 은사님이세요..
수애당주인 아버님과도 친분이 있는데
타누키님 덕에 정겨운 풍경 구경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