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독립문역 코스 출발+인왕사+국사당 by 타누키

몸을 좀 더 움직여보자는 취지하에 계획된 등산 ㅡㅡ;; 서울에서 거의 제일 낮은 산인 인왕산으로 목표를 잡았다.
도심이다보니 많은 등산로가 존재했는데 독립문역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뭔가 제일 볼만할 것 같다....
는 자료(?)에 이쪽으로 정해서 시작했다. 독립문역에서 인왕산 등산로 입구까지는 좀 되는데
그냥 택시로 타고 올라갔다. 오래된 건물들이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거의 아파트 촌이라...
(원래는 시립미술관에서 고흐전을 보고 가려했으나 경악의 모네전 때보다 사람이 더 많았던지라....
미술관에서 바깥까지 줄 서 있는건 처음 보는 것 같다. ㅡㅡ;;)


분해됐던 카메라 조립 중..ㄷㄷ



상수도 소화전이라고 상상상상.....수질이 좀 다를려나 ㅡㅡ?


이제까지 봐왔던 당목 중 제일 짧을 것 같은 당목...몽당연필같다. ㄷㄷ


인왕사
풍수상으로 조산인 북한산에서 주산인 북안산에 연결되고 낙산이 좌청룡이며, 인왕산이 우백호가 되는 산.
동쪽 기슭은 아늑하고 풍치가 빼어나 장안 제일의 명승지가 되며, 북쪽은 무계동(武溪洞)이라 불리워 중국의
무릉도원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인왕산 호랑이하면 서울 시민 모르는 이 없으며, 서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 하면 모르는 이 없는 산이다.
조선 초기 태조가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으로 창건한 인왕사는 많은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서울 사대문
안에 자리한 도량이었다. 인왕사에 올라 선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의 조망은 마치 레고를 쌓아 놓은
조형물의 전시장 같지만, 멀리 우뚝 선 보현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이어지는 비봉능선의 선경들은 마치 먼
옛날의 조선과 현재의 서울이 교차하는 타임머신을 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오를수 있고 도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서울의 명산에 자리한 인왕사는 선바위ㆍ국사당으로
불리는 무불습합의 신앙지와 함께 특이한 가람을 구성하고있다.
5개종단의 11개 암자가 하나의 인왕사라는 하나의 명칭 아래 공존하는 곳.
처음 사찰을 찾는 이들은 여느 사찰에서 느낄 수 없는 특이한 공간에 어색함을 느끼지만, 선바위로 오르는 여정에
다양한 암자들의 독특한 모습과 부처님들을 친견하는 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그마한 근심이나 먼 옛날 호국도량의 의지를 맛 보고 싶을 때 언제나 오를 수 있는곳.
그 곳 인왕산에 먼 옛날 솟아 오른 영험한 선바위와 한양을 지키며 자리한 인왕사가 500여년에도 그랬듯이 현재도
여전히 경복궁 수호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보통 한 절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건물씩 떨어져있다는게 특이하다.
또한 지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전통적인 건물이라기 보다 좀 더 실용(?)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ㅎㅎ



난간같은 가스 배관...


국사당
선바위 아래에 자리한 국사당은(중요민속자료 제 28호)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無學大師), 그리고 여러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고 있으며, 특히 무학대사를 모시고 있어
국사당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로, 높게 쌓아 올린 콘크리트 기단 위에 마름모꼴 초석을 두고 그 위로
사각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탱하고 있으며, 건물 외부는 4분합의 정자살 창호를 단장하고 어칸에 편액을 두고 있다.
원래 국사당은 남산 꼭대기 곧 팔각정 자리에 있었는데,『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396년(태조 5)에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태종 4년에는 호국의 신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도 불렀다.

1925년에 남산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일인의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전할 때 목재를 그대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였으며, 국사당의 전면 3칸 좌우로 협칸을 한 칸씩 붙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전면은 약 20여m이고 측면은 9m이며, 기둥 칸살은 전면 어간(御間) 약 2.6m에 협간(夾間)과
측간(側間)은 모두 2.4m로, 내부 넓이는 모두 11평이다. 건물은 대들보의 후림이나 서까래의 배흘림, 규격 설정 등에서
경공(京工)의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영조(英祖)나·정조(正祖) 이래의 견실과 간결을 위주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건물 내부에는 전면에 신상(神像) 10점이 걸려 있고 왼쪽 벽에 5점의 신상이, 오른쪽 벽에 3점의 신상이 있다.
모두 18점의 신상이 걸려 있으며, 신당 양쪽 방에 각각 4ㆍ6점의 신상이 보관되어 있으며, 모두 28점이 민속자료
(중요민속자료 제 1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중 12점은 조선 인조 때의 것으로 추정되며, 16점은 고종 때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뚜렷한 근거는 없다. 모두 비단 바탕에 채색한 것이다.

인왕사 국사당은 굿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참배하고 기도도 드리곳으로, 참배객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에서도 찾아오며, 정월에 가장 많이 찾아온다. 국사당에서 주로 행하는 굿은 사업 번창을 비는
경사굿과 병(病)굿 또는 우환굿 그리고 부모의 사령(死靈)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진오귀굿이다. 그러나 이 당은
무당이 상주하는 곳이 아니고 당주(堂主)가 관리하면서 무당의 요청이 오면 당을 빌려주기 때문에 1년 내내 굿을 하나
하루에 보통 3건, 많을 때는 4∼5건, 특히 3월과 10월이 가장 많고 음력 섣달은 굿이 거의 없는 편이다.
당주는 신령님을 위해 2년마다 동짓달에 날을 잡아서'마지'라는 제사를 올리는데, 무녀를 초치해서 굿을 한다.
특히 국사당 주위에는 기자암(祈子岩)으로 이름난 선(禪)바위가 있고, 암자가 여러채 있으며 또한 일반주택과
격리되어 있어 굿장소로 적합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국사당은 없어져 가는 서울 무속인의 집결처로서 무속신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최근에 굿을 해서 인지 음식과 막걸리병이 치워져 있었다. 한번 봤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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