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사] 기영각+적묵당+설선당 by 타누키



기영각
기영각은 숙종 36년(1696)에 현응 조사가 성전암과 더불어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1974년과 1983년의 두 번에 걸친
보수공사가 실시되었습니다. 화강석 바른층 쌓기 기단 위에 건립된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의 겹처마 팔각지붕입니다.
구조양식은 덤벙초석 위에 원주를 세우고 주상에 주두(柱頭)와 함께 앙서(仰舌)와 쇠서(牛舌)를 장식한 외일출목(外一出目)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구는 5량가(樑架)이나 우물 천장으로 가리어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주심포계 건물로 주두의 장식이 번잡하게 발달한 조선후기 공포양식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편액
무병과 수명, 광명등 중생이 영원히 갈구하며 기원하는 전각으로 "기영각(祈永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현응스님은 세자의 탄생을 기원하라는 숙종의 부탁으로 기도하였다. 이때 태어난 왕자가 뒷날 영조가 되었다고 한다.
세자가 태어나자 숙종은 현응의 뜻에 따라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기영각을 지었다고 한다.
-안내문에서 발췌-


아무래도 신자가 아니다보니 거의 안에 들어가보지 못하는데 아쉽다. ㅠㅠ;; 탱화, 불단 등 볼 것이 많다고 한다.


기영각에서 본 눈오는 풍경..




적묵당
적묵당은 신라 애장왕 5년(804)에 창건되었다는 사전과 광해군 12년(1620)에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숙종 21년(1695)에 중건되고 1920년 중창되었으며 1976년 번와공사가 있었습니다.
정면 6칸, 측면 6칸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물이며, 앞면만 겹처마인 팔작지붕입니다.
구성양식은 주상에 주두(柱頭)를 얹은 굴도리집으로 상부가구는 5량가입니다. 현재 객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비교적 소박한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편액
고요히 깊이 생각에 잠기어 말이 없는 것을 적묵(寂默)이라고 합니다. 즉 번뇌가 쉬는 곳을 "적묵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적묵당 용마루에 있는 녀석..동물인거 같긴 한데 뭔진 모르겠다.


설선당
인조 1년(1623) 계관 법사에 의해 창건되어 1646년과 1725년 두 번의 중건과 1762년 중건 공사가 실시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후 1922년과 1973년 부분적인 보수 공사가 실시되었으며, 1976년 대수선을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입니다. 구조양식은 고복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주두(柱頭)을 얹은 민도리집이며 상부가구는 5량가(梁架)입니다. 이 건물은 대중식당과 강습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구조양식과 가구수법이 간결하면서도 견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판
'산해숭심(山海崇深)',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듯하다. 아마 직접 쓰여진 것은 아니고(공식정보가 없는걸보니..)..
거의 똑같은 글씨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을 검색으로 찾아내긴 했다. ㅡㅡㅋ

편액
회산(悔山)의 글씨로 "설선당(說禪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설법과 참선을 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설선당 범종
설선당에 모셔진 중종(中鐘)으로 법회 집행때 마다 사용하는 의식법구입니다. 항아리 모양의 종신부(鐘身部)의 상하대(上下帶)
에는 인동문이 약하게 새겨져 있으며, 유곽(乳廓) 안에 9개의 유두(乳頭)는 두드러지게 돌출되어 있습니다. 종을 두들기는
연화문의 당좌(撞座) 안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종신부의 꼭대기에는 음통과 용뉴가 약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범종각과 진동루(아마?)..진동루 쪽에 아직 보수가 덜된 것인지 칠해지지 않은 부분이 보인다.




처음에 파계사라고 들었을 때는 대체 이름이 왜이래 ㅡㅡ;;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파계라니....
마치 파계승들이 모여서 만든 것 같지 않은가..하지만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물길을 잡으며 만든 이름이라는데
지금도 파계사 앞의 넓은 저수지가 그 이유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내려서 찍지를 못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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