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동별당+널뛰기+열화당+행랑채+자미재+입구 by 타누키



동별당
집안의 잔치나 손님 맞이에 주로 사용되었고 방과 마루의 모든 벽체가 문으로 되어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들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
-안내문에서 발췌-

1815년에 지어진 건물로 당초 그 곳에 있던 건물이 퇴락하여 신축하였다. 본 건물은 집안 친척들이 각종 제사,잔치 때에 모이면
숙소와 연회장으로 사용하였다. 선교장의 건물중 제일 호사하게 지은 건물로서 목수가 기둥하나 잘 깎으면 쌀 한가마씩을
주었다고 한다. 건물이 높고 방들이 큼직하며 방과 마루의 사이 벽이 문으로 되어 있어서 칸막이 벽이 없어지고 건물 전체가
하나의 방이 되어서 선교장 주인들의 개방적이며 활달한 성품이 건물의 구조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마지막에는 집안의 장녀인
고모님이 사용하시다가 윤보선 대통령의 아우님께 출가하셔서 선교장과 윤 대통령과 사돈간이 되었다. 전쟁 때 아군의 방화로
행랑채부터 타 들어오다가 이곳의 집중적인 방어로 불을 막았기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
-http://cafe.naver.com/kblee48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29에서 발췌-

문화안내사의 필요...와 함께 팜플렛 강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알려진, 숨겨진 이야기라던지를 듣고 배우는데
안내사가 제일 좋지만 아무래도 적은 수가 요청하기엔 힘드니 좀 더 강화된 팜플렛이 있어야 겠다.
(뭐 이건 거의 모든 문화재의 문제지만....절의 경우엔 많은 자료가 있어서 찾기 좋은데 문화재청에 아직도 제대로
자료가 안올라가 있다. 사진만 덩그러니...게다가 검색은 아직도 구축 중.....아놔..)
겨우 네이버카페가 따로 있어서 볼 수 있었다.


서별당...이라기 보다는 옆건물? 전체지도가 없어서 이게 어떤 건물인지 잘 모르겠다. ㅡㅡㅋ
전체지도 좀 제발...ㅠㅠ;;


보통 조용~한데 왁자지껄하길레 이게 뭐지 하고 가보니 단체로 오셔서 놀고 있었다.
널뛰기를 가르치고(!) 계셨는데 결국 할 줄 몰라서 직접 몸을 잡고 시범을 보이셨던...


열화당
1815년에 건립된 건물로서 선교장 주인 남자의 거처이다. 일가 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건물 앞의 테라스는 조선 말기 러시아식의 건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지어준 것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에서 따온 말로서 우애와 화목, 그리고 친교를 나누 는 집을 뜻합니다.
1815년 가세가 한창 번성할 때 식구들이 늘어나고 손님의 방문이 많아지자 이 건물 을 짓고 집안의 종손이신 조부님들이
기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쪽에 중사랑을 지으시고 관동팔경을 오가는 나라의 모든 풍류들을 벗하고 집안의 대소가들을
자주 드나들게 하시어 베푸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한국 최초의 석판 인쇄기를 제작하시어 당시 문걸들의 시문을 제작하여
나누어 주셨고, 족보와 각종 문헌들, 그리고 조상님들의 행장을 기록하여 집안의 모든 대소가들에게 배포하시어 집안의
긍지를 심게 하셨습니다. 건물 앞의 테라스는 조선말기 러시아 공사관 직원들이 영동지방 여행을 왔다가 선교장에
장기간 머물다 간 후 러시아 공사가 러시아에서 구리판을 들여와 목재와 목수를 보내고 답례의 선물로 지은 것입니다.
문화재적인 가치보다는 역사이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보존토록 하고 있습니다. 근엄하신 조부님들이 기거하시던 곳이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불원간 선비문화의 체험장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http://cafe.naver.com/kblee48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29에서 발췌-

러시아식이라 그런지 특이한 모양인데 묘하게 잘 어울린다. 출판회사 열화당도 여기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의 안쪽..대들보가 마치 뿔같은 느낌이다.


행랑채
신분이 낮은 손님과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안채로 가는 안대문, 사랑채로 가는
큰대문이 따로 있어서 남녀유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선교장의 행랑채는 일자형으로 24칸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건물의 정면에서 담과같은 구실도 한다. 사랑채로 출입 하는 큰대문과
안채로 출입하는 안대문이 있으며 좌우측으로 작은 솟을대문이 있어서 사람들이 건물과 외부를 출입 하는데 지극히 편리한 구조로
되어있다. 지나는 객들의 숙소로서 관동펄경 지나는 모든 선비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또한 사랑채의 일을 맡은 집사와 안채의
시종이 머무는 방이 각 대문 옆에 있으며 좌우 끝으로는 화장실이 따로있어서 남 녀 불편없이 사용할수 있었으며 행랑채는 흔이
집안 종들이 머무는 곳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곳에서 머무는 선비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주였으며 높고 귀한 손님의 처소는
따로있다. 행랑채 건물이 정면에서 선교장의 큰위상을 발휘하고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집안의 세도를 나타내는데 무언의 큰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큰 손님맞이 건물을 지어 인정을 베풀므로 선교장 300년 이어온 큰 복의 근원 이었음을 재삼 느끼게한다.
-http://cafe.naver.com/kblee48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29에서 발췌-


행랑채 반대편..굴뚝도 그에 맞춰서 줄줄이다.


자미재(맛을내는 집)
이곳은 모친 생전에 강릉 여성들에게 전통 음식을 강의 하시던 곳이다. 모친께서는 관동 대학교에서 가정과 교수로 전통 의상과
음식에 대해 강의를 하셨는데 학교에서 돌아 오시면 이곳에서 강릉의 여성들을 상대로 전통요리와 선교장 전래 음식을
가르치셨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해 올림픽 기념 한국전통 음식5000년 전시회에서 선교장의 전통의 12첩 반상이 전시되어
요리계의 화제가 되었으며 의상과 음식에 있어서 시집살이의 경험을 토대로한 강의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그일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열성의로 행하셨다. 본건물은 삼척 폐가에서 뜯어온 적송에다가 평창에서 모은 돌기와를 가지고
1996년 본인이 지은것으로 이건물을 창고로 쓸 목적이었으나 모친께서 자미재로 활용 하신것이다.
-http://cafe.naver.com/kblee48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29에서 발췌-

특정한 안내판이 없어서 이게 무슨 건물인가..싶었는데 이런 곳이 었군....


명자꽃이 동백보다 더 크게 자라있었다. 오오...


선교장의 대문..


선교장 입구도 저번에 왔을 때는 없었는데 좀 더 문화재답게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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