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층석탑
1983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0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하고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한 고려초기의 석탑이다. 2층의 기단으로 상층기단은 4개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고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를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1층은 5개의 옥개받침을 갖고 있으나, 탑신2층과
3층은 각 3개의 옥개받침을 갖고 있다. 석탑 상륜부에는 3층의 지붕돌과 한돌로 만들어진 노반이 있으며, 수레바퀴 모양의 보륜과
보개가 남아있다. 지붕돌은 끝이 올라가 있으며 파손된 귀퉁이 부분이 보인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석탑의 높이는 410 cm이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이름과는 달리 꽤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다. 상층기단들의 비율들이 멋지다. 오오..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은 안동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376년) 조사당(1377년) 강릉 객사문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며
현존하는 건축물로 건축사연구는 물론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받는다. 수덕사 대웅전은 일제강점기 1937
년에도 한번의 수리공사가 있었다. 대웅전 전각건물이 퇴락하여 일본인들에 위해 해체수리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리를 받치는 장여(長舌)와 화반(花盤)의 밑둥에서 발견된 '지대 원년 무신 4월 17일에 기둥을 세웠다.
(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는 묵서명을 통해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건립되었고 조선시대에는 1528년
(중종 23)과 1688년(숙종 14), 1751년(영조 27), 1803년(순조 3)에 각각 몇번의 보수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 4칸으로 구성되었는데, 정면보다 측면의 칸수가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은 석축의 기단위에
세워졌다. 기단은 길게 다듬어 만든 장대석을 7단을 쌓았다. 맨위층의 갑석 한단은 앞으로 조금 나오게 해서 하부 여섯 단의
기단과 구분하였다. 대웅전의 초석은 자연석 주초(柱礎)를 사용하였다. 대웅전 정면열 평주(平柱)와 우주(隅柱)의 초석들은
기둥이 올려지는 자리에 주좌를 둥근 형태로 돋음하여 놓았다. 주좌는 주초윗면에 기둥을 받치는 부분을 약간 높게 자리새긴
자리를 일러 주좌라고 한다. 고려시대 초석의 형태는 정교한 가공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양을 취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남아있는 목조건축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전각의 초석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바로 양측면
중앙의 사각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의 크기와 이형(異形)이 그것이다. 건물형태에서 가장 중추역할을 하는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기둥인지라 내려앉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다른 초석들보다 크기가 큰 자연석을 사용하고 있다. 또 돋음 주좌없이 자연석
주초의 형태위에 기둥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주초단면에 따라 사각기둥 하단부분을 그렝이질(기둥 밑둥과 주춧돌이
밀착하도록 하는 정밀한 작업) 하여 두부재가 맞닿는 면이 일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 기둥 목조가옥에서 기둥은 그
놓이는 위치에 따라 , 또 기둥의 길이에 따라 구분한다. 또 기둥의 단면형태에 따라 원주와 방주로 나누기도 한다. 수덕사 대웅전의
기둥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신전건축물의 기둥에서 보이는 엔타시스기법(고전건축에 사용된 기둥)과 그 맥을 같이한다. 기둥의
아랫부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기둥의 지름이 커지다가 기둥높이의 1/3지점에서 다시 기둥의 지름은 좁아진 형태를 띠는데, 이를
일러 배흘림기둥이라고 한다. 건물을 보다 안정감있게 보이게 하려는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현존건축물 중에 강릉 객사문
기둥에 이어 두 번째로 배흘림기법(위와 아래는 좁고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기둥형태)이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창호를 살펴보자. 대웅전의 창호는 정면3칸에 각 칸마다 세짝의 빗살문을, 측면 양쪽 모두 홀출입문을 달아두었다. 배면에도 각
칸마다 두짝의 널문을 달아두었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배면중앙칸에만 이분합의 판문을 달았고 양 옆칸은 회벽으로 마감해
막혀있고 문틀만 남아있는 상태다. 정면 창호에서도 중앙칸의 가운데문 한 짝만이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있어 유일한
출입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창호윗단에 경첩이 달려있어 출입의 용도보다는 조망과 채광을 위해 만들어진 들어열개창(문위쪽만
고정되어 문을 밖의 고리에 걸어 활짝여는 방식)이다. 큰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이 들어열개창은 그 빛을 발해 이목이 집중되는
역할을 한다. 공포는 처마를 길게 내밀게 하기 위한 역학적 장치의 하나로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해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며 또한 중첩되는 부재들의 의장적인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이 된다. 수덕사 대웅전의 공포는 기둥위에만
짜여져있는 주심포 형식이다. 대웅전 전각의 내부는 반자(천장)를 꾸미지 않고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으로 법당의 개방적
공간감을 살리고 있다. 법당안 2열로 2개의 고주(高住:평주(平柱)보다 키가 큰 기둥. 흔히 안통에서 있어 내진주(內陣柱)라 부른다)
를 세웠으며 이 2개의 고주위로 대들보가 얹어졌다. 대들보에는 금룡도가 그려져 있으니 동측 법당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이른
시간에는 감상할 수 있다. 가구를 이루는 구성요소는 수평재로 보가 있고 수직재로 대공과 화반이 있으며 경사재로 솟을 합장재가
있다. 보는 다시 쓰임과 위치에 따라 대량(大樑) 종량(宗樑) 퇴량(退樑) 그리고 계량(繫樑) 우미량(牛尾樑)으로 세분화한다.
지붕의 무게가 종보 밑의 우미량에서 대들보 위에 얹힌 소꼬리 형태의 우미량으로 전달되고 다시 퇴보위에 놓여져 파련대공
(하나의 판재를 불로초나 구름모양으로 입체적으로 화려하게 초각 장식한 것)을 받치고 있는 우미량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연속되어 내려오는 곡선부재 우미량과 종보(들보위에 이층으로 걸린 보)를 받치고 있는 솟을 합장재의 곡선미에서 수덕사
대웅전의 의장미를 발견할 수 있다.
대웅전 측면가구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기하학적인 화반과 보아지(들보를 받는 첨자처럼
생긴 나무)의 구성에서 부드러운 곡선부재 솟을 합장재와 우미량에서 한국 목조 건축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큰 건물임에도 자잘한 부가적 느낌없이 큼직큼직한게 마음에 쏙 든다.(안 그런 건물들을 워낙 많이 봐서..)

특히 이 옆부분이 일품!!

뒤쪽에는 붓꽃 천지~ 살짝 지고 있었지만 농염한 무늬는 강렬하다.

불교엔 역시 좋은 말들이 많다. 흠흠...

누가 돌아가셨다고 붙여놓은 것을 봤다. 흠.....그래서 명부전 앞에 흰등을 달아놓았다고...

명부전
수덕사 명부전은 1968년에 원담스님이 건립하였으며 맞배지붕이며 정면3칸 측면2칸의 주심포집이다.
명부전은 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자는 것)을 기원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전각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할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으며 창호가
있는 전각 전면을 제외한 내부 세 벽면에는 유명계[幽冥界:지하(地下)의 세계인 유명계(幽冥界) 또는 명토(冥土)라 하는 곳은
염마왕(閻魔王)이 다스리는곳]를 보여주는 시왕도가 후불탱과 함께 목조로 부조되어 봉안되어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명부전 지장보살좌상과 목각시왕탱
수덕사 명부전의 지장보살좌상은 왼손 바닥에는 보주를 올려 놓았으며 오른손 엄지와 가운데손가락사이에 석장을 끼워 잡고 있다.
지장보살상은 민머리에 통견으로 중품중생인을 결하였고 결가부좌하였다. 의습은 대웅전의 본존불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
후대에 조성된 지장보살이 모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각안의 불단은 상대·중대·하대의 3단을 이루고 있으며 팔각대좌위에
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해놓았다.
유명계를 관장하는 시왕 가운데 도산지옥을 다스리는 진광대왕(秦廣大王)이 첫 번째 왕이다. 죽은 사람의 처음 칠일을 관장하는
명관이다. 도산지옥에서 중생들의 망어죄(妄語罪)의 죄를 다스리는데 업의 경중을 다는 저울인 업칭(業秤)에 죄업을 달아보고 그
무게만큼의 벌을 내린다.
망자가 죽은지 14일이 되면 건너게 되는 강이 있다. 나하(奈何)라는 큰강이다. 그 강의 초입에 관청을 세우고 망자의 도하를
감시하고 있어 초강대왕이라고 부른다. 화탕지옥(火湯地獄)을 관장하는데 옥졸이 죄인을 끊는 물에 집어넣고 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송제대왕은 한빙지옥(寒氷地獄)을 맡는 3번째 왕으로 사후(死後) 21일을 주관한다. 사람들의 사음(邪淫)의 일을 다스린다.
얼음산에 갇힌 망자들의 모습과 사자의 인솔에 따라 지옥으로 끌려오는 죄인망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4번째왕인 오관대왕은 검수지옥(劍樹地獄)에서 다섯 가지 형벌을 주관하는 왕으로 죽은 사람의 네 번째 칠일까지 맡는다.
옥졸에게 번쩍들어 올려져 검산에 내동댕이 쳐지는 장면과 검산에 떨어진 죄인들을 독사가 휘감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지옥의 대표주자인 염라대왕은 다섯번째 왕이다.
제6왕은 변성대왕이다. 업칭(業秤)과 업경(業鏡)에 의해 재판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이 있으면 지옥에 보내 벌을 받게 한다.
태산대왕은 대애지옥(??地獄)을 다스리며 사후(死後) 일곱 번째 칠일, 즉 49일을 관장하는 왕이다. 염라대왕의 서기역할을
맡아보고 있으며 기록에 의하여 선악의 경중에 따라 망자들이 다음생에서 어떤 몸을 받고 태어나게 될지를 결정한다.
평등대왕은 8번째왕인데, 사후의 백일째 일을 관장한다. 톱에 의해 몸이 잘리는 거해지옥(鋸解地獄)을 다스리기도 하며 팔한팔열
(八寒八熱)지옥을 관장한다. 죄복의 업을 공평하게 다스린다하여 평등대왕이라고 한다.
제9도시대왕은 사후의 일주기를 관장하는 왕이다. 명부전의 열명의 대왕중 마지막 왕이 오도전륜대왕이다. 죽은 사람의 삼주기의
일을 관장한다.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다스린다. 죽은 후에 여러왕을 만나 죄값을 치른 뒤 마지막으로 마주치게 되는 열 번째
왕은 망자가 다시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를 최종 결정한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안에서 절하시는 분들이 많아 다 찍지는 못했지만....

청련당 입구

광대수염..이름답게 좀 무서운 느낌이다. 보통 잎밑에 둥그렇게 모여피기 때문에 더 음산하다. ㅡㅡㅋ

꽃양배추..중복되겠지만 꽃양배추꽃...꽃양배추 잎만 봐오다가 꽃은 처음 본다. 보통 잎이 지면 뽑아버리기
때문이라는데....흠흠..그냥 양배추 꽃보다는 꽃잎이 좀 구불구불한게 다른 것 같다.

1983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0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하고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한 고려초기의 석탑이다. 2층의 기단으로 상층기단은 4개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고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를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1층은 5개의 옥개받침을 갖고 있으나, 탑신2층과
3층은 각 3개의 옥개받침을 갖고 있다. 석탑 상륜부에는 3층의 지붕돌과 한돌로 만들어진 노반이 있으며, 수레바퀴 모양의 보륜과
보개가 남아있다. 지붕돌은 끝이 올라가 있으며 파손된 귀퉁이 부분이 보인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석탑의 높이는 410 cm이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이름과는 달리 꽤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다. 상층기단들의 비율들이 멋지다. 오오..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은 안동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376년) 조사당(1377년) 강릉 객사문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며
현존하는 건축물로 건축사연구는 물론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받는다. 수덕사 대웅전은 일제강점기 1937
년에도 한번의 수리공사가 있었다. 대웅전 전각건물이 퇴락하여 일본인들에 위해 해체수리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리를 받치는 장여(長舌)와 화반(花盤)의 밑둥에서 발견된 '지대 원년 무신 4월 17일에 기둥을 세웠다.
(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는 묵서명을 통해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건립되었고 조선시대에는 1528년
(중종 23)과 1688년(숙종 14), 1751년(영조 27), 1803년(순조 3)에 각각 몇번의 보수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 4칸으로 구성되었는데, 정면보다 측면의 칸수가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은 석축의 기단위에
세워졌다. 기단은 길게 다듬어 만든 장대석을 7단을 쌓았다. 맨위층의 갑석 한단은 앞으로 조금 나오게 해서 하부 여섯 단의
기단과 구분하였다. 대웅전의 초석은 자연석 주초(柱礎)를 사용하였다. 대웅전 정면열 평주(平柱)와 우주(隅柱)의 초석들은
기둥이 올려지는 자리에 주좌를 둥근 형태로 돋음하여 놓았다. 주좌는 주초윗면에 기둥을 받치는 부분을 약간 높게 자리새긴
자리를 일러 주좌라고 한다. 고려시대 초석의 형태는 정교한 가공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양을 취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남아있는 목조건축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전각의 초석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바로 양측면
중앙의 사각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의 크기와 이형(異形)이 그것이다. 건물형태에서 가장 중추역할을 하는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기둥인지라 내려앉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다른 초석들보다 크기가 큰 자연석을 사용하고 있다. 또 돋음 주좌없이 자연석
주초의 형태위에 기둥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주초단면에 따라 사각기둥 하단부분을 그렝이질(기둥 밑둥과 주춧돌이
밀착하도록 하는 정밀한 작업) 하여 두부재가 맞닿는 면이 일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 기둥 목조가옥에서 기둥은 그
놓이는 위치에 따라 , 또 기둥의 길이에 따라 구분한다. 또 기둥의 단면형태에 따라 원주와 방주로 나누기도 한다. 수덕사 대웅전의
기둥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신전건축물의 기둥에서 보이는 엔타시스기법(고전건축에 사용된 기둥)과 그 맥을 같이한다. 기둥의
아랫부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기둥의 지름이 커지다가 기둥높이의 1/3지점에서 다시 기둥의 지름은 좁아진 형태를 띠는데, 이를
일러 배흘림기둥이라고 한다. 건물을 보다 안정감있게 보이게 하려는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현존건축물 중에 강릉 객사문
기둥에 이어 두 번째로 배흘림기법(위와 아래는 좁고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기둥형태)이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창호를 살펴보자. 대웅전의 창호는 정면3칸에 각 칸마다 세짝의 빗살문을, 측면 양쪽 모두 홀출입문을 달아두었다. 배면에도 각
칸마다 두짝의 널문을 달아두었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배면중앙칸에만 이분합의 판문을 달았고 양 옆칸은 회벽으로 마감해
막혀있고 문틀만 남아있는 상태다. 정면 창호에서도 중앙칸의 가운데문 한 짝만이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있어 유일한
출입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창호윗단에 경첩이 달려있어 출입의 용도보다는 조망과 채광을 위해 만들어진 들어열개창(문위쪽만
고정되어 문을 밖의 고리에 걸어 활짝여는 방식)이다. 큰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이 들어열개창은 그 빛을 발해 이목이 집중되는
역할을 한다. 공포는 처마를 길게 내밀게 하기 위한 역학적 장치의 하나로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해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며 또한 중첩되는 부재들의 의장적인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이 된다. 수덕사 대웅전의 공포는 기둥위에만
짜여져있는 주심포 형식이다. 대웅전 전각의 내부는 반자(천장)를 꾸미지 않고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으로 법당의 개방적
공간감을 살리고 있다. 법당안 2열로 2개의 고주(高住:평주(平柱)보다 키가 큰 기둥. 흔히 안통에서 있어 내진주(內陣柱)라 부른다)
를 세웠으며 이 2개의 고주위로 대들보가 얹어졌다. 대들보에는 금룡도가 그려져 있으니 동측 법당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이른
시간에는 감상할 수 있다. 가구를 이루는 구성요소는 수평재로 보가 있고 수직재로 대공과 화반이 있으며 경사재로 솟을 합장재가
있다. 보는 다시 쓰임과 위치에 따라 대량(大樑) 종량(宗樑) 퇴량(退樑) 그리고 계량(繫樑) 우미량(牛尾樑)으로 세분화한다.
지붕의 무게가 종보 밑의 우미량에서 대들보 위에 얹힌 소꼬리 형태의 우미량으로 전달되고 다시 퇴보위에 놓여져 파련대공
(하나의 판재를 불로초나 구름모양으로 입체적으로 화려하게 초각 장식한 것)을 받치고 있는 우미량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연속되어 내려오는 곡선부재 우미량과 종보(들보위에 이층으로 걸린 보)를 받치고 있는 솟을 합장재의 곡선미에서 수덕사
대웅전의 의장미를 발견할 수 있다.
대웅전 측면가구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기하학적인 화반과 보아지(들보를 받는 첨자처럼
생긴 나무)의 구성에서 부드러운 곡선부재 솟을 합장재와 우미량에서 한국 목조 건축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큰 건물임에도 자잘한 부가적 느낌없이 큼직큼직한게 마음에 쏙 든다.(안 그런 건물들을 워낙 많이 봐서..)

특히 이 옆부분이 일품!!

뒤쪽에는 붓꽃 천지~ 살짝 지고 있었지만 농염한 무늬는 강렬하다.

불교엔 역시 좋은 말들이 많다. 흠흠...

누가 돌아가셨다고 붙여놓은 것을 봤다. 흠.....그래서 명부전 앞에 흰등을 달아놓았다고...

명부전
수덕사 명부전은 1968년에 원담스님이 건립하였으며 맞배지붕이며 정면3칸 측면2칸의 주심포집이다.
명부전은 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자는 것)을 기원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전각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할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으며 창호가
있는 전각 전면을 제외한 내부 세 벽면에는 유명계[幽冥界:지하(地下)의 세계인 유명계(幽冥界) 또는 명토(冥土)라 하는 곳은
염마왕(閻魔王)이 다스리는곳]를 보여주는 시왕도가 후불탱과 함께 목조로 부조되어 봉안되어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명부전 지장보살좌상과 목각시왕탱
수덕사 명부전의 지장보살좌상은 왼손 바닥에는 보주를 올려 놓았으며 오른손 엄지와 가운데손가락사이에 석장을 끼워 잡고 있다.
지장보살상은 민머리에 통견으로 중품중생인을 결하였고 결가부좌하였다. 의습은 대웅전의 본존불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
후대에 조성된 지장보살이 모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각안의 불단은 상대·중대·하대의 3단을 이루고 있으며 팔각대좌위에
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해놓았다.
유명계를 관장하는 시왕 가운데 도산지옥을 다스리는 진광대왕(秦廣大王)이 첫 번째 왕이다. 죽은 사람의 처음 칠일을 관장하는
명관이다. 도산지옥에서 중생들의 망어죄(妄語罪)의 죄를 다스리는데 업의 경중을 다는 저울인 업칭(業秤)에 죄업을 달아보고 그
무게만큼의 벌을 내린다.
망자가 죽은지 14일이 되면 건너게 되는 강이 있다. 나하(奈何)라는 큰강이다. 그 강의 초입에 관청을 세우고 망자의 도하를
감시하고 있어 초강대왕이라고 부른다. 화탕지옥(火湯地獄)을 관장하는데 옥졸이 죄인을 끊는 물에 집어넣고 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송제대왕은 한빙지옥(寒氷地獄)을 맡는 3번째 왕으로 사후(死後) 21일을 주관한다. 사람들의 사음(邪淫)의 일을 다스린다.
얼음산에 갇힌 망자들의 모습과 사자의 인솔에 따라 지옥으로 끌려오는 죄인망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4번째왕인 오관대왕은 검수지옥(劍樹地獄)에서 다섯 가지 형벌을 주관하는 왕으로 죽은 사람의 네 번째 칠일까지 맡는다.
옥졸에게 번쩍들어 올려져 검산에 내동댕이 쳐지는 장면과 검산에 떨어진 죄인들을 독사가 휘감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지옥의 대표주자인 염라대왕은 다섯번째 왕이다.
제6왕은 변성대왕이다. 업칭(業秤)과 업경(業鏡)에 의해 재판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이 있으면 지옥에 보내 벌을 받게 한다.
태산대왕은 대애지옥(??地獄)을 다스리며 사후(死後) 일곱 번째 칠일, 즉 49일을 관장하는 왕이다. 염라대왕의 서기역할을
맡아보고 있으며 기록에 의하여 선악의 경중에 따라 망자들이 다음생에서 어떤 몸을 받고 태어나게 될지를 결정한다.
평등대왕은 8번째왕인데, 사후의 백일째 일을 관장한다. 톱에 의해 몸이 잘리는 거해지옥(鋸解地獄)을 다스리기도 하며 팔한팔열
(八寒八熱)지옥을 관장한다. 죄복의 업을 공평하게 다스린다하여 평등대왕이라고 한다.
제9도시대왕은 사후의 일주기를 관장하는 왕이다. 명부전의 열명의 대왕중 마지막 왕이 오도전륜대왕이다. 죽은 사람의 삼주기의
일을 관장한다.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다스린다. 죽은 후에 여러왕을 만나 죄값을 치른 뒤 마지막으로 마주치게 되는 열 번째
왕은 망자가 다시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를 최종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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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절하시는 분들이 많아 다 찍지는 못했지만....

청련당 입구

광대수염..이름답게 좀 무서운 느낌이다. 보통 잎밑에 둥그렇게 모여피기 때문에 더 음산하다. ㅡㅡㅋ

꽃양배추..중복되겠지만 꽃양배추꽃...꽃양배추 잎만 봐오다가 꽃은 처음 본다. 보통 잎이 지면 뽑아버리기
때문이라는데....흠흠..그냥 양배추 꽃보다는 꽃잎이 좀 구불구불한게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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