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화소굴+관음바위+설화+골담화(버선꽃)+다람쥐
해우소 위에 있는 화소굴..이름도 특이하건만 홈페이지에도 사찰사이트에도 검색에도 특별히 기술된 곳이 없는 것 같다.


관음바위 설화의 바위다. 특별히 전해지는 구전도 써있지 않건만(나중에 알았지만) 모두 소원을 비는 동전던지기를 하고 있다.
나도 던져보았지만 기이하게도 다른 아이의 주머니로 쏙 들어가버렸다. ㅎㅎ 역시 난 남 좋은일만 할 팔자인지도 모르겠다.
그거라도 잘하면 좋겠지만 ㅡㅡ;;


꽤 어려운데 역대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있었다.


수덕각시와 관음바위 설화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심상궁곡인 수덕사에 이 여인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정혜라는 청년은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때부터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고 바위속으로 사라진 이 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경향각지에 퍼지자 소원을 비는 인적이 끊이지 않았으나, 수덕사는 근대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스님의 가풍을
간직한 선찰로서 자칫 기복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이를 더이상 구전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많은 불자들의 심원
(心願)에 따라 수덕사에서는 이 성역에 참배 기도하는 이에게 관음의 신통묘용(神通妙用)한 가피(加被)가 얻어지기를 기원하며
근래에 관음상을 봉조하게 되었다

수덕도령과 덕숭아씨 설화
수덕사는 충남 서해안에선 으뜸으로 꼽는 절인데 여기에도 전설이 하나 있다. 홍주 목사 고을에 수덕이란 도령이 하나 있었다.
그는 양반집 아들로 의젓하게 살고 있는 부자집 아들이었다. 그는 사냥을 좋아해서 어느 해 가을엔 몸종들을 데리고 사냥을
갔었다. 몸종들과 산을 둘러싸고 몸종들이 짐승을 몰아 짐승들이 나타나면 수덕이가 화살을 날리어 잡는 그런 사냥이었다.
몸종들이 나뭇가지를 탁탁 털면서 “우------”하고 몰아오더니 “노루야 노루야”하고 소리쳤다. 수덕은 화살엔 자신이 있었으므로
언덕 아래에 숨어서 활을 조이며 쳐다보고 있는데 정말 송아지만한 노루가 자기 앞으로 껑충껑충 뛰어오고 있었다.
수덕은 바삐 활시위를 잡아당겼다가 딱 멈췄다. 수덕이 어쩐 일인지 화살을 날리지 않고 멈추자 “도련님 노루예요. 어서 화살을
날리세요” 몸종들이 화살을 날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우성이 커질수록 활시위에 천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끝내 노루를 놓치고만 몸종들은 섭섭해 했지만 그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노루가 뛰어올 때부터 화살이 잡은 노루의 방향에
어여쁜 낭자가 똑같이 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루가 사라지자 뛰어가던 낭자가 자기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선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더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그는 책을 펼쳐도 글씨는 보이지 않고 낭자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는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자기를
아끼는 할아범 몸종에게 낭자를 찾아보라 했다. 할아범은 여러 마을에 수소문한 결과 바로 건너 마을에 사는 덕숭이란 낭자라
했다. 덕숭낭자는 혼자 살고 있는 낭자로써 그 아름다움이나 마음씨가 고와서 온 마을에서도 뛰어난 낭자란 평이었다.
할아범으로부터 이런 이야기까지 들은 수덕은 더욱 고민하다가 밤에 덕숭낭자의 집을 찾아갔고 낭자 앞에서 자기는 꼭 낭자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우격다짐을 했다. 그랬더니 낭자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머리를 떨군다.
허나 수덕도령은 꼭 결혼하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새벽닭이 울때까지 덕숭낭자를 졸라댔다. 낭자는 닭 울음소리 따라 머리를
들듯 얼굴을 세우고 수덕을 바라본다. “저와 결혼을 꼭 하시고 싶으시면 먼저 소녀의 청을 들어주셔야 하겠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세워 주세요.” 덕숭낭자가 절을 세워달라고 원하자 수덕도령은 쾌히 승낙을 했다.
그날부터 절간을 짓기 시작했다. 많은 인부들이 작업을 해서 그런지 절간은 바삐 지어졌다. 수덕도령은 낭자 집으로 낭자를
찾아가서 절이 지어졌노라고 전했다. 그랬더니 낭자는 하는 말이 “어째서 절을 지으면서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몸을
탐내십니까. 그런 절은 바로 없어집니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때였다. 밖에서 “우루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 지은 절간이 부서졌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다.
허나 수덕도령은 다시 절을 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불이 나 타버렸다. 수덕도령이 날마다 목욕을 하고 몸가짐은 정돈이 되었으나
마음에 부처님보다 덕숭낭자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 했다. 그는 잿더미 위에 또 절을 짓기 시작했다. 이번엔 참으로
절이 잘 지어졌다. 절이 완성되자 덕숭낭자는 결혼을 승낙했다. 그래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자기 몸에 손을 못 대게 했다. 허나,
어느 날 수덕도령은 참을 수가 없어서 와락 덕숭낭자를 껴안았다.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문짝이 달가닥하고 떨어지며 이불이
공중에 뜨더니 자기를 밀어 제치고 이불이 둥둥 떠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낭자는 온데 간데 없고 버선 한 쪽만 쥐어져
있었다. 이번엔 천둥의 소리가 났다. 그러자 그들이 살던 집은 불더미가 되고 수덕도령이 앉아있던 자리에 바위가 생겼다. 그리고
그 바위에 버선모양의 꽃이 피었다. 낭자는 관음보살이 화현하여 속세에 와서 살았다 해서 ‘덕숭산’이라 했고 절간은 수덕도령이
지었다 해서 ‘수덕사’라 불리우게 됐다. 그리고 바위에 피는 꽃은 버선모양이라 해서 ‘버선꽃’이라 불리우게 됐다고 한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수덕사의 설화들은 모두 여인에게 속아(?) 절을 짓도록 이용당하는 이야기인데 참...ㅡㅡ;;
"나랑 결혼할려면 돈은 많이 몸에는 손끝도 대지 말것~" 잔인한(?)미소의 관음상님 ㅠㅠ;;


이것이 바로 버선꽃이라는 골담화..골담초는 몇번 보았는데 꽃은 이번에 처음봤다. 뒤가 싸리와 좀 비슷한데
더 크고 화려한게...어디선가 지팡이를 꼽았는데 현대까지 그 나무가 살아있고 그게 골담초라는 이야기였다.
거기선 만지면 남자아이(꽃을 가져가면 이던가..)를 얻을 수 있다기에 나무에 철창까지 쳐놨는데 여긴 그런 구전은
없어서 그런지 오픈되어 있다. ㅡㅡㅋ


설치류임에도 역시 귀여운 다람쥐...요즘 인간세상의 쥐와는 다르게 좋구나~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타누키 | 2008/06/15 05:01 | ▷▶수덕사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anngabriel.egloos.com/tb/442393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