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타래붓꽃+대웅보전+모란+은방울꽃 by 타누키



무늬가 아름다운 타래붓꽃..


대적광전에서 올라가는 길~


대웅보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모신 대웅보전은 중층의 불전으로 대광보전의 뒤쪽, 산 위에 위치하고 있다.
비탈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넓은 대지를 확보할 수 없었고, 축대 위에 만들어진 앞마당은 매우 좁은 편이다. 그래서 대웅보전
자체로 보면 대광보전 뒤의 높은 축대 위에 비좁게 서있는 듯 하고 대웅보전 앞마당에서는 건물 전체를 조망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다. 그러나 대광보전 앞마당에서 보았을 때 대웅보전은 규모가 크고 수평적인 느낌이 강한 대광보전 뒤편에 수직적인
느낌을 부가하고, 대광보전에 가려 상층 부분만 인식됨으로서 중첩된 처마로 인한 건축적 공간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처럼 두
개의 전각이 높낮이를 달리 하면서 하나의 시야 속에 들어오도록 앞뒤에 겹쳐서 배치된 예는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마곡사만의 특징이다. 대웅보전은 대광보전 옆을 돌아 높은 계단을 올라 다다르게 된다. 정면이 아닌 약간 측면에서 돌아 오르도록
되어 있으므로 대웅보전 앞마당은 좁지만 계단을 오르고, 약간 측면에서 진입하는 과정에서 중층의 건물 전체를 인식할 수 있다.

지형의 경사로 인해 기단은 전면이 높고 측면과 후면은 낮다. 기단은 자연석을 수평을 맞추어 쌓은 막돌 바른층 쌓기이며, 정면
중앙에 기단과 동일한 재질의 석재로 계단을 만들었다. 기단 상면은 강회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기단은 최근에 개축한 것으로
원래의 모습은 아니다. 전체적인 평면의 구성은 중층 건물을 구성하기 위한 구조와 의장적인 고려와 함께 불단 뒤쪽으로
후퇴시킴으로서 예불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중층의 불전이나 내부는 상하층이 통해 있다. 하층은 도리통 5간
양통 4간인데 반해 상층은 도리통을 2간, 양통을 1간 줄여 도리통 3간, 양통 3간으로 구성하였다. 하층은 도리통 5간 중 중앙의
3간을 동일한 주간으로 설정하고 양쪽 끝 협간은 줄였다. 양통은 중앙의 2간을 도리통 어간보다 약간 줄여 잡았고, 전후 툇간은
주간을 많이 줄였다. 내부에는 양 측면의 기둥 열에 맞추어 전후에 각 4개씩의 고주를 세웠다. 양통의 전후 툇간을 좁게 설정하고
고주를 빠짐없이 세운 것은 중층건물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고려였다. 상층은 도리통 3간, 양통 3간이다. 하층 내부의 전후 고주가
그대로 상층의 전후 평주가 되므로 도리통 3간은 하층 도리통의 중앙 3간과 일치한다. 상층 측면의 기둥은 하층 양측의 대들보
위에 세워 하층의 기둥 위치에 관계없이 3간으로 구성하였다. 하층은 전면 중앙 3간에 3분합, 양쪽 끝 협간에 두 짝의 문을
두었으며, 양 측면 전퇴에 외짝 문, 후면의 중앙 3간에 각 두 짝의 창을 달았다. 상층에는 전면에만 교살 형식의 광창(光窓)을 달아
채광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는 모두 판벽을 설치했다. 하층 내부에는 후면의 고주열에 의지하여 3간 길이로 불단을
마련하였다. 하층과 상층의 공포는 모두 내외3출목(내외7포)의 다포식으로 동일한 구조이다. 기둥 위에 창방을 짜고, 그 위에
평방을 올려 공포대를 받도록 하였다. 창방과 평방의 뺄목은 비교적 긴 편이며, 창방뺄목에만 초각을 하였다. 하층에는 모든
주간에 각 1구의 주간포를 두었으며, 상층에는 도리통 세 간과 양통의 어간에만 주간에 각 1구 씩의 주간포를 두었고, 양통의 전후
툇간은 주간이 좁기 때문에 주간포를 생략하였다.

주간포의 배열은 평면 각 주간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주었다. 먼저 하층의 모서리 간에 있는 주간포는 정면과 후면 및 양
측면 모두 그 위치를 귀포 쪽으로 바짝 붙여 놓았다. 모서리간의 평면이 장방형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따라서 공포의 간격에
차이가 생겼으며, 첨차의 길이를 다르게 하여 포벽의 길이를 조절함으로서 공포 사이의 간격이 같게 보이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절은 상층의 공포 배열에서도 보인다. 양 측면의 전후 툇간에 주간포가 생략됨으로서 측면 중앙 간의 공포 간격과 툇간에서의
공포 간격에 차이가 생겼다. 주심포에 사용된 첨차의 길이를 공포 사이의 간격이 큰 귀포 쪽이 중앙 간 쪽에 비해 길게 함으로서
포벽의 길이를 조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포 사이의 간격이 워낙 커서 포벽의 크기를 똑같이 만들지는 못하였다. 이렇듯 평면의
비례를 공포 간격에 따라 정확히 맞추지 않고 그에 따른 공포 사이의 간격을 첨차의 길이를 조절함으로서 포벽이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고자 하는 수법은 중국이나 일본건축과 구분되는 한국건축의 특성이다.

각 공포는 살미에 화려한 초각을 해 장엄을 더하도록 의도하였다. 살미는 5단을 사용했는데 제1단에서 제4단까지는 앙서형으로
하였고, 제5단은 주심포에서는 보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용두형을 조각했다. 앙서 위에는 연화를 새겼다. 초제공, 이제공
삼제공, 사제공, 오운공의 구성인데, 아직 최상단을 운공, 그 아래 단을 익공, 다시 그 아래 전체를 제공으로 하는 수법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살미의 구성은 조선후기의 법식을 따르고 있으나 17세기 이후의 법식이 정착되기 전 단계의 과도적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살미의 내단은 상층의 주간포만 교두형으로 하고 나머지는 전체를 한 몸으로 초각한 양봉형 또는 운궁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연봉과 연화 등의 화려한 초각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비교적 투박한 형태의 초각을 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건축적 특성을 보이면서도 아직 본격적인 조선 후기 불전 건축의 장엄성에 이르지 못한 수법이다. 첨차는 소첨과 대첨을
사용하였으며, 모두 교두형이다.

중층 건물에서는 상층의 기둥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대웅보전은 하층의 전후면 고주를 그대로 상층의 전후면 평주로
사용하였다. 하층 전후면 평주 위에는 양쪽 끝 바로 안쪽의 주열에만 대들보를 사용하였고, 이 대들보 위에 상층 측면의 기둥을
위에 세웠다. 또한 하층 측면의 주심포에서는 이 대들보에 충량을 걸었으나 충량은 도리를 받기 위한 기능은 하지 않고 있다.

상층은 하층의 5×4간 중 중앙부의 3×2간 면적에 3×3간의 평면으로 구성하였다. 하층 사방의 1간 너비를 줄인 것인데, 이 1간
너비는 전후면이 양 측면에 비해 좁다. 이로 인해 상층을 세우고 난 하층의 모서리 간은 장방형을 이루게 되어 추녀는 45도
방향으로 설치할 수 없게 되고 하층의 지붕 물매는 정면과 후면에 비해 양 측면을 완만하게 구성할 수밖에 없는 변형이 생겼다.
상층의 가구는 일반적인 무고주 5량을 이루고 있다.

기둥은 모두 원주로 외부의 기둥은 비교적 반듯한 부재를 사용하고 있으나 내부의 고주들은 휜 부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특히
하층에 사용된 2개의 대들보를 비롯해 상층에 사용된 보도 휜 부재를 활용하고 있다. 휜 부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조선 후기 건축의
일반적인 모습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장 아래로 노출되는 상층 대들보의 중앙부는 아래 면에 약간의 반곡을 주는 월량
(月樑) 형식의 치목을 하는 등 의장성을 고려하기도 하였다.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이며, 상층은 팔작지붕이다. 하층의 추녀는 그 끝을 강한 곡선으로 조각을 했다. 구조상 이 부분의
지붕이 물매가 급하게 되었기 때문에 처마를 많이 들어주기 위해서 추녀를 굵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따른 변형으로 다른
건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상하층 추녀 아래는 모두 활주를 사용해 보강했는데, 초각을 한 가는 받침형의 부재를 두어
장식했음이 특징이다. 기와는 특별한 장식용 기와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범자를 새겨 장식한 암막새와 숫막새를 사용했으나 모두
최근에 교체된 것들이다.

바닥 전체에는 우물마루를 들였다. 하층 천장은 공포 사이에 순각판을 들인 외에 양 측면 대들보와 공포대 사이 좁은 공간에
우물천장을 들였다. 상층은 대들보 옆면에 의지해 전체에 우물천장을 들였다. 다만 중앙부의 우물천장은 양쪽과 달리 조각한
소란대를 더해 장엄을 더하고 있다. 건물 내외는 전체에 단청을 베풀었다. 내부의 단청은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외부의 단청은 1985년에 새로 칠한 것이다.

정면의 중앙 세 간에 설치한 삼분합문은 아래에 궁창부를 두고 그 위를 띠살로 구성하였다. 사찰 정면의 창호에 띠살을 들인 예는
많지 않은 편인데, 후대의 개조일 가능성도 있다. 양쪽 끝 협간에는 두짝의 여닫이문을 들였는데 기본적으로는 중앙부의 창호와
같은 형식이나 정자살을 들였음이 다를 뿐이다.

대웅보전이 지닌 건축양식은 조선후기에 속하나 조선후기의 전형적 특성이 발현되기 전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므로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웅보전에 대한 기록이 적어 그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1851년)을 비롯해 현재 내부에 걸려 있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記文을 통해 대웅보전의 연혁을
추정해볼 수 있을 뿐이다.

'康熙九年庚戌六月初一日 公山地華山麻谷寺二層大藏殿丹靑記' : 1670년(현종 11)
'忠淸右道公州泰華山麻谷寺大雄殿懸板' 聖上卽祚16年 歲次 己卯正月15日 : 1879년(고종 16)
대웅보전 내부 기문
기문 중 먼저 주목되는 것은 1670년(현종 11)에 쓴 '공산지화산마곡사이층대장전단청기'이다. 건물명이 대장전(大藏殿)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분명하게 2층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1670년에 이 건물을 단청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 기문이 대웅보전에
보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웅보전은 원래 대장전으로 건축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1670년에 단청을 하였으므로 그 이전부터
존속했던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부 고주에 시주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등 고주를 비롯한 포벽 등 곳곳에 많은 묵서가
적혀 있다. 불전에서는 흔하지 않은 것으로 이 건물이 원래 불전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웅보전이
위치한 터가 매우 협소하며, 상층의 벽이 판벽으로 구성된 점 역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한편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에 의하면 마곡사는 1650년부터 각순에 의한 중창불사가 이루어져 사격(寺格)을 갖추었고, 1782년
9월 6일에 발생한 대화재로 법당을 비롯한 1,050여 간의 건물이 소실되어 1785~1788년에 걸쳐 법당, 즉 현재의 대광보전이
중건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대장전은 1650년 각순에 의한 중창 불사로 조영된 후 1782년의 화재 때 대장전은 소실되지
않았고 임시로 법당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 1985년 해체 공사 중에 ‘康熙二年 癸丑 五月’(1663
년), ‘康熙三十四年 乙亥’((1695년), ‘乾隆二十七年 壬午’(1762년) 등의 명문이 적힌 기와가 확인된 점 역시 이 건물이 1782년
대화재에 소실되지 않고 유지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건축양식과 기록 등에 의해 현재의 대웅보전은 1650년 이후 각순의 마곡사 중창불사에 의해 대장전으로 조영된 후 1782년
대화재로 법당이 소실되자 임시로 법당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법당, 즉 대광보전의 중건 이후에도 계속해서 불전으로서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831년에 아래층 중수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879년(고종 16)의 '충청우도공주태화산마곡사대웅전현판'에 따르면 적어도 이때부터는 대웅보전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특이하게 2층의 구조이다. 대적광전 밑에서 보면 연결된 것 처럼 보인다니...흠흠...


대웅보전 삼존불+후불 탱화
불단은 하층의 후면 고주열에 의지해 불벽을 구성하고 그 앞에 세 간에 걸쳐 설치했다. 수미단은 높이가 낮은 편이며, 받침부
위에 세 단으로 구성하고 있다. 맨 아래 층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위 두 단에는 각각 꽃을 형상화한 무늬를 조각했다.
본존으로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모셨다. 모두 수미단 형식의 목조 좌대 위에 모셔졌으며
목조좌상으로 금칠을 하였다.

삼불(三佛) 뒤에는 후불탱으로 각각 가로 156cm, 세로 270cm 크기의 3폭으로 이루어진 삼세불화를 걸었다. 모두 본존을
중심으로 한 동일한 구도로 석가불화를 중심으로 양쪽의 약사와 아미타불화에 사천왕과 팔부중을 나누어 배치하였고
각 불화에 협시불이 그려지지 않았음이 특징이다. 중앙의 석가불화는 8대보살과 벽지불, 10대제자, 제석과 범천, 2신중
2동자로 구성되었다. 좌측의 약사불화는 약사여래좌상을 중심으로 6대보살, 벽지불, 10대제자, 제석과 범천, 2천왕, 용왕과
용녀, 아자타삿투 왕과 베데히 왕비, 4구의 동자와 동녀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아미타불화는 6대보살, 벽지불, 10대제자
제석과 범천, 2천왕, 2신중, 2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살짝 시들었지만 역시 모란...


이것도 처음 본 것 같은데 은방울꽃이다. 생긴게 초롱모양이라 한참 찾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백합류다. ㅡㅡㅋ
하여튼 이름에 딱 걸맞는 모양...예쁘다..


동자님들 한 컷~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구글검색


www 내 블로그 검색

사이드1

사이드1.5

2018 대표이글루_photo

예스24

통계 위젯 (화이트)

1164863
3944
4903146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93

메모장 드래그금지버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anngabriel.egloos.com의 저작물인 이 저작물은(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라이선스의 범위 이외의 이용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anngabriel.egloos.com을 참조하십시오. Locations of visitors to this page

사이드3

구글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