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곡사] 설선당 조왕신(부엌귀신)+하대웅전+상대웅전+철조비로자나여래상+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등나무 꽃+치마바위 전설 by 타누키



조왕신-부엌귀신
조왕(槽王)이란 부엌을 맡은 신을 말함인데, 고대의 다신교(多神敎)의 습속에서 연유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의
주변에는 많은 신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터를 지켜주는 「터주신」이 있고, 또 집을 지키는
성주가 있는가 하면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부엌에는 조왕신의 상징으로 「조왕단지」를
갖추어 놓고 1년 동안 비우지 않고 계속 물을 채워두는 것이다. 그런데 각 가정에 따라 다르다. 즉 매일 아침 새로운 물로
갈아 놓는 집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조왕단을 만들어 놓은 가정도 있었다.
-http://www.taean.go.kr/gunzi/gz_index.asp?menu=d01_01&img=04에서 발췌-

태안군 사이트에 이런 좋은 자료가 있었을 줄이야....오오 특히 다른 귀신이나 풍습도 잘 나와있어서...+_+
설선당의 옆에 부엌이 있는데 조왕신이 모셔져 있었다. 설선당도 건축물이 괜찮았었는데 왜 안찍었지 ㅡㅡㅋ


하대웅전
장곡사 중심영역에 있는 불전으로 아래쪽에 있어서 하대웅전으로 불린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 볼 때 조선 중기에 지은 건물로 생각된다. 건물은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았는데 지형에 적절하게 2단으로
구성하였다. 기단 한가운데 계단을 1개소 두었으며 좌측에서도 오르내릴 수 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상부는 창방과 평방을 결구한 뒤 공포를 올렸다. 포는 내외 모두 2출목으로 포를 짰다. 정면에는 어칸만 주간포를 2구
배치하고 좌우 협칸에는 1구씩 두었으며, 측면에는 주간포를 각각 1구씩 두었다. 구조는 반자를 설치하여 드러나지 않는다. 처마는
앞뒤 모두 서까래 위에 부연을 둔 겹처마로 구성하고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었다. 지붕 좌우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전체적으로 우물반자를 설치하였으며 주불 머리 위만 특별히 감입천장을 꾸몄다. 감입천장은 방형으로 안에는
2출목의 다포계 공포를 짜고 반자를 설치하였으며 반자 면에는 황룡을 그려 장식하였다. 정면 3칸에만 문을 달았다. 가운데 칸은
4분합을, 좌우 협칸에는 2분합문을 설치하였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안에는 가운데 뒤쪽에 붙여서 불단을 조성하고
보물 제337호로 지정된 금동약사여래좌상을 안치하였으며 뒤에는 근래 조성한 후불탱을 걸었다. 이외 불당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한 약사불홍탱, 신중탱과 범종을 함께 안치하였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설선당의 보살님이 무서워서 안을 찍진 못했고 밖만...ㅎㅎ 상하의 두 대웅전이 있지만 다른 곳의 대웅전보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아 두 곳을 합쳐야 그나마 다른 곳의 대웅전 크기가 나올 것 같다.
물론 크기로 중심을 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언덕 옆에 있는 나무...언덕 밑에서부터 상대웅전 옆까지 올라가 있기에 직접 보면 그 크기가 장대하다.


상대웅전에서 내려다보며..


상대웅전
하대웅전보다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난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내릴 수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의 특성을 구비한 다포계 맞배집이다. 자연석을 다듬어 3단 정도 쌓아 기단을 조성하였다.
기단 위에 역시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상부는 창방을 결구하고 포를 배치하였다.

공포는 외1출목이며 정면에만 주간포를 1구씩 두었다. 구조는 앞뒤 기둥 위로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결구한 다음 파련대공을 세워 종도릴 받은 5량가로 짰다. 종도리 받침재의 경우 좌우 끝 칸에는 동자주로 세웠다. 종보를
받는 동자주는 모두 주두 같은 받침재를 대들보 위에 놓은 후에 세웠다는 점도 색다르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였으며 그 위에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으로 만들었다. 지붕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여 비바람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다. 정면 가운데칸 공포 전면에 대웅전이란 현판을 걸었다. 정면 3칸에만
문을 달았다. 가운데 칸은 3짝 분합문을, 좌우 협칸에는 4짝 분합문을 설치하였다. 내부는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연등천장이며
바닥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8엽 연화문 전돌을 깔았다.

상대웅전은 주간(柱間)에도 공포를 배치하였고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인 첨차는 다포계 공포의 수법을 지니고 있으나 평방을
쓰지 않고 창방 위에 포를 올려놓고 있어 주심포집의 특성도 섞여 있다. 그리고 대들보와 주두(柱頭)를 다듬은 기법에서
고려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정조 1년(1777) 공사 때 구부재와 신재를 섞어 사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공사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

건물 내부에는 중앙의 불단에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좌상, 오른쪽에 약사불좌상을 봉안하였다. 중앙에
위치한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는 보물 제174호, 오른쪽의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는 국보 58호로 지정되어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철조비로자나여래상-삼불 중 중앙불
철조비로자나여래상은 고려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단정한 얼굴모습 등에서 통일신라불상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석등대석을 포함한 전체높이 226cm이며, 불상의 높이는 61cm으로 상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중앙에 봉안되어 있으며
1963년 보물 제 174호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대좌는 상단 연대석(蓮臺石)은 8면에 8각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의 연판문(蓮瓣文)이며, 중간 간석은
팔각의 기둥, 하단 연대석은 8각 면에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의 연판문이 사각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조각되어 있다. 이 대좌는 석등의 남겨진 부재로 추측되지만 그 조각수법은 철조약사여래좌상의 대좌로 되어 있는 석대좌와
함께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신라말 고려초에 유행하였던 철제비로자나불상의 한 계통으로, 전체적으로
왜소한 조형미를 보이고 있다. 이마와 턱이 좁은 상호에 긴 귀, 활처럼 곡선진 눈썹, 작은 입과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머리는 나발의 형태이며, 육계가 뚜렷하지 못하다. 신체는 어깨는 넓으나 상반신이 짧아 사각형태인 가슴은 왜소하게 느껴지며
결가부좌한 무릎의 높이도 낮아 전체적인 신체 비율이 맞지 않는다. 불의는 우견편단식으로 걸쳤는데, 불의는 신체에 밀착되어
많은 잔주름을 동반하고 있다. 수인은 비로자나불의 지권인을 취하고 있다.

현재 본래의 대좌 없이 석등대석으로 추정되는 석물 위에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 뒷면에는 후대에 제작된 목제 주형(舟形)
광배를 갖추고 있다. 목제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묘사하고 그 주위를 화염문(火焰文)을 주형으로 둘렀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8엽 연화문 전돌이라는데....정말 그 시대 것인데 이렇게 잘 보존될 수가 있나....대단하다.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삼불 중 좌우의 상
철조약사여래좌상은 특이한 석탑모양의 대좌와 함께 신라말 고려초의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전반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 2.32m, 대좌 높이 0.91m로 1962년 국보 제58호로 지정되었으며, 상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향우측에 봉안되었다.

대좌는 불상에 비해 거대한 방형 석조대좌로, 기단 4면에 각각 안상을 두고 그 위에 연화문의 부화(俯花)를 둘렀는데
그 조각의 수법이 매우 우수하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대석(上臺石)에는 중판(重辦)의 연화문이
하대석에는 복판의 연화문이 각각 장식되어 있으며, 하대석의 연화문에는 심하게 돌출된 귀꽂이 표현되어 있다. 4단의
층계형 받침위에 안치된 중대석(中臺石)은 전후에 2조, 좌우에 1조씩 안상(眼象)이 모각되어 있다. 지대석(地臺石)의
네모서리에는 초석형상을 한 2단의 받침부가 모각되어 있다.

조각수법이 매우 우수한 철조약사여래상은 호분을 칠해져 약간 변형이 느껴지나, 형태가 매우 단아하다. 상호는 작고
단아하며 긴 눈, 작은 입에 수염이 있으며, 비교적 세밀하게 표현된 나발의 머리에는 높으나 불분명하게 표현된 육계가 있다.
불의는 우견편단식으로 걸쳤는데 신체에 밀착되어 잔주름을 이루고 있다. 신체는 당당하고 양감도 풍부하지만, 다소
형식화되어 있다. 수인은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왼손은 무릎위에 얹어 약합(藥盒)을 받치고 있는데 현재 왼손에
올려진 약합부는 원형을 잃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지만, 무릎과 손, 팔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현재 방형의 석조대좌에 뒤편에는 후대에 제작된
목제 주형(舟形) 광배를 갖추고 있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묘사한 주형광배로 광배 중심부에는 화문(花文)을, 테두리에는
화염문(火焰文)을 새기고 있어 신라말과 고려초에 유행하던 광배를 본 따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불상에서는 복장품과 함께 불상중수기문이 확인되었다. 당시 각종 염주와 약초, 묘법연화경(7권) 등의 복장품이
발견되었는데, 묘법연화경은 조선 초기 간본으로 추정되는 것이며, 함께 출토된 수구문에는 중종 12년(1517)에 해당하는
연호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중수기 문에 숙종 21년(16951)년에 해당하는 연호가 있는 점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 불상이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반적인 대웅전이나 다른 전의 느낌과 전혀 다르다. 후불탱화도 없고 단도 딱히 있는듯 없는듯..


마당에는 귀여운 아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뛰어놀고 있었다. 처음엔 쌍둥인가 했지만...


장곡사 앞의 등나무 쉼터..


치마바위 전설
이화리 장승제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한 문현상의 기록은 없지만 다만 이마을의 '치마바위' 전설만이 내려 올 뿐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치마바위가 있는데 밤마다 칠갑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부녀자들을
잡아다가 그 바위에서 잡아먹은뒤 치마만 남겨놓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장승을 세워 호환을 막아달라고
빌었더니 그 뒤로 호랑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매년 정초에 정월보름날의 일진을 봐서 생기복덕 닿는 사람을 화주, 축관으로 정하고 이들 집에는 제사날까지 금줄을 달아
부정을 막고, 당일 아침부터 마을사람들이 모여 장승을 깎는가하면 한쪽에서는 음식을 마련 저녁식사후 동쪽과 서쪽의
장승지에서 차례로 제사를 지낸다. 제사시에는 집집마다 소제를 올려 안녕을 빌며 이동시에는 광솔불을 붙은 불깡통을
여러명이 들고서 길을 밝혀 안내를 한다.

제사가 끝난 후에는 집집마다 나무한짐씩을 해다 모아 묶어 놓은 봉화에 불을 붙여 액운을 쫓아내며, 마을사람들이 풍장과
춤, 불깡통을 돌리며 한데 어울리는 민속 놀이 이다.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행사로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오고있는
민속으로 매년 음력 정월보름에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여 제사와 놀이를 하여 오고 있는 민속이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특별히 장곡사에서 기술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사찰사이트에서 장곡사 설화로 기록되어있다.
물론 같은 대치면에 있긴 하지만 직선거리로 따져도 이화리와 장곡사는 6km정도 떨어져 있는데 흠흠...
치마바위가 장곡사 주변에 있었으려나....

덧글

  • 표지 2008/06/17 17:59 # 답글

    여전히 좋은곳을 많이 다니십니다~~
    청양에 다녀오셨군요...장곡리는 몇번 가봤는데...장곡초등학교까지요~~장곡사는 한번도 못가봤다는...(-.-;;;
    아무튼...여행 사진들 보면 많이 부럽습니다~~~^^*
  • 타누키 2008/06/18 02:21 # 답글

    ㅠㅠ 감사합니다. 본업(?)을 팽개치고 유랑하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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