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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전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갑사 중심 일곽에서 그 앞을 흐르는 계곡을 건너 서남쪽 별도의 영역에 대적전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후 갑사가 중창되기 전 원래의 갑사 중심 영역으로 금당터가 있던 옆이다. 대적전 앞마당에는 현재 사자암에서 옮겨온 고려시대 초기의 부도 1기가 있으며, 그 앞으로 난 길을 내려가면 철당간이 서있다. 건축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으로 보인다. 한편 정면 어간의 현판에 ‘道光六年四月日牧岩書’라는 명문이 있는데, 건축양식으로 본 시대와 부합되므로 현판이 제작된 조선 1826년(순조 26)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청이 퇴락되어 있던 것을 최근에 새로 입혔으며, 1984년에 시도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대적전은 원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와 아미타불의 삼신불을 모시는 불전이나 여기에서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평면은 도리통 3간, 양통 3간으로 도리통은 어간을 협간에 비해 2배 정도로 넓게 설정하였다. 내부에는 측면의 후면 쪽 평주 열에 맞추어 고주를 세우고 여기에 의지해 후불벽을 만들고 그 앞에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삼존불을 모셨다. 특이한 점은 후불벽 앞쪽의 2간 통에는 마루를 깐 반면 뒤쪽의 1간 통에는 온돌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적전이 갑사의 중심 영역에서는 멀리 떨어져 위치하고 있으면서 암자로 운영되었던 상황을 반영하는 평면구성이라 할 수 있다. 정면은 어간에 사분합, 협간에 두 짝 여닫이를 들였다. 아래에 궁창부를 한 단 두고 그 위를 모두 띠살로 만든 동일한 형식의 창호이다. 좌측면에는 전퇴 쪽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후면의 온돌방에 채광을 하기 위해 좌측면 후퇴 쪽에는 살창을 달았다. 기단은 잘 다듬은 장대석을 두 단 쌓은 두벌대로 기단 상면은 강회다짐으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막돌을 이용하고 있으나 일부 초석은 상면에 주좌를 쇠시리 한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고막이를 받친 지대석 중에는 쇠시리가 남아있는 것이 있다. 현재의 대적전 이전에 이곳, 또는 부근에 옛 건물이 남아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기둥은 모두 원주이다. 원주는 비교적 잘 다듬어 사용했고 민흘림이 완연하다. 기둥 상부에는 창방과 평방을 돌렸고, 그 위에 다포식 공포를 올렸다. 주간포는 정면과 후면 어간에 각 2개, 나머지 간에는 각 1개씩 두었다. 각 공포는 외2내3출목, 외5내7포의 구성으로 건물의 규모에 맞추어 출목 수는 적은 편이다. 주심포에는 보머리가 돌출해 있고, 주간포에는 그 높이에 해당하는 운공을 둔 점에 차이가 있을 뿐 주심포와 주간포의 구성은 동일하다. 살미는 제1단과 제2단을 앙서형, 제3단을 수서형으로 하였고, 주간포에만 있는 제4단 살미는 당초문을 초각하였다. 초제공, 이제공, 삼익공, 사운공의 구성으로 조선시대 후기 다포식 공포의 전형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앙서형의 쇠서 위에는 연봉을 초각함으로서 장엄을 더한 점 역시 조선후기 다포식 공포가 법식화 되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다만 후면에서는 살미의 단부를 모두 교두형으로 처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후면의 공포를 생략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조선시대 후기 불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내부 쪽의 살미는 전체를 한 몸으로 초각하여 양봉형과 운궁형으로 구성하고 있다. 첨차는 대첨과 소첨만 사용하였다. 그 형태는 교두형으로 단부를 직절하고 그 하부를 사절한 형식화된 모습을 보인다. 가구는 1고주5량으로 전면과 후면의 주심포 위에서 고주로 대량과 퇴량을 걸었다. 양 측면의 주심포에서는 대량과 고주에 충량과 퇴량을 걸었다. 그 상부의 구조는 천장에 가려 있다. 보는 휜 부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데 목재의 수급상황이 원활하지 않았던 조선후기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로 팔작지붕이다. 막새기와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용마루 양쪽 끝에는 용두를 올려 장식했다. 천장은 전체에 우물천장을 들였으나 중앙의 1간을 주변에 비해 한 단 높게 만든 층단천장을 이루도록 하였다. 건물 내외에는 단청을 하였는데, 외부의 단청은 탈락이 심했던 것을 최근에 다시 칠한 것이다. 새로 칠한 외부의 경우 기둥과 창방, 평방 도리 등에 머리초를 그린 모로단청을 베풀었으나 포벽과 정면 창호 상부의 회벽 등은 단청을 하지 않아 허전한 감이 있다. 그러나 내부의 포벽에는 나한상을 빠짐없이 그렸고 층급을 이루는 천장의 측면 벽에도 별지화를 그려 넣었다. 건물 정면 어간에는 ‘大寂殿’이라 쓴 현판을 걸었다. 현판 한쪽에는 ‘道光六年四月日牧岩書’라고 쓴 명문이 있다. 도광 6년은 1826년(순조 26) 에 해당한다. 정면 기둥에는 '太一眞如大覺空 / 法身卽寂化身雄 / 金軀艮不眉閒白 / 長照一元三甲中'이라 쓴 주련을 걸었다. 현재 대적전의 정확한 창건연도를 기록한 문헌은 없다. 그러나 대적전은 17세기를 지나 18세기부터 나타나는 다포식 공포의 법식화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휜 부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고, 공포의 구성에 화려한 초각의 경향을 보이는 등 18세기 이후 불전의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편 도리통의 협간을 어간에 비해 1/2정도로 많이 줄여서 설정한 점은 18세기보다는 19세기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건축 양식적 특성과 함께 현판에 쓰인 명문으로 보아 대적전은 현판이 씌어진 1826년(순조 26)경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 ![]() 대적전 삼존불 대적전은 원래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불전이지만 여기에서는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불단은 고주에 의지해 어간을 벗어나도록 길게 설치했다. 불단은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하층은 그 면을 3단으로 나누고 각 단에 죽절형의 기둥을 세워 격자형을 만들었다. 각 격자 속에는 각기 다양한 형태의 안상을 새겨 변화를 주었다. 나지막이 구성한 상층 불단은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삼존불은 각각 수미좌 형식의 좌대 위에 모셔져 있다. 목조로 된 석가여래상은 결가부좌한 모습의 좌상이다. 상호는 원만하고 육계가 매우 약화되어 있다. 상반신은 빈약한 편이며, 양 어깨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으나 좁은 편이다. 반면에 결가부좌한 다리는 매우 넓게 과장되어 있다. 양 손은 모두 양 발 위에 올려놓고 있다. 범의는 통견이며, 군의(裙衣)는 상반신의 중앙까지 내려와 가슴을 많이 노출시키고 있는데, 법의의 주름은 형식화된 모습을 모인다. 전체적으로 조선말기의 불상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본존 좌우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려하게 장식된 화관을 쓰고 있으나 영락은 늘어뜨리지 않았고 양 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보살상은 신체의 비례나 조각수법이 본존과 동일하다. 본존불 뒤에는 후불탱화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그린 삼불회탱(三佛會幀)을 봉안하였다. 화면을 상하로 나누어 상부에는 신광과 두광을 갖춘 삼여래를 그렸고, 그 아래에 그 권속으로서 보살들을 배치하였다. 어간 좌우 협간의 후불벽에는 좌우로 나누어 사천왕도를 봉안하였다. 좌측의 사천왕도에는 칼을 들고 있는 동방 지국천과 비파를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을 그렸다. 우측의 사천왕도에는 앞쪽에 용과 보주를 든 남방 증장천을 그리고 그 위쪽에 탑을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을 그렸다. 이밖에 남쪽 측면 벽에는 중단(中壇)으로서 별도의 불단을 마련하고 신중탱을 봉안했다. 불단은 최근에 새로 만든 것이다. 신중탱은 좌우대칭으로 상부에는 제석천과 대범천을 배치하고, 화면 중앙의 위태천을 중심으로 여러 신중과 사천왕을 배치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 전통찻집..열지 않은 것 같다. 흠흠... ![]() ![]() 경치가 참 좋았는데 돌아와서 자료를 찾다보니 이 기사를 보고서 기분이 별로가 됐다. 흠흠... ![]() 공우탑 갑사 중심 영역에서 대적전으로 가는 도중 남쪽 계곡을 건너자마자 작은 규모의 삼층석탑이 있다. 공우탑이라 부르는 탑으로 백제 비류왕 4년(재위304~344년) 계룡산 갑사에 속한 암자를 건립할 때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군자 냇물을 건너다가 죽자 그 소를 이곳에 묻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자연 암반 위에 나지막한 기단을 형식적으로 만든 위에 세웠다. 각층의 탑신은 동일한 형태로 우주만을 새겼는데,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급격한 체감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은 각 층마다 층급받침을 다른 형태로 만들었다. 1층 옥개는 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는데, 층급의 높이가 매우 낮아 형식화 된 모습을 보인다. 2층 옥개의 층급받침은 5단이나 한 단은 높고 한 단은 낮게 하여 변화를 주었다. 3층 옥개의 층급받침은 5단으로 층급의 높이도 다른 층에 비해 높은 편이다. 3층을 제외한 1, 2층의 층급받침은 그 높이가 낮아 형식화 된 모습이다. 한편 2층과 3층 탑신에는 3층에 ‘功’, 2층에 ‘牛塔’이라는 글자를 음각해 탑명(塔銘)을 적고 있다. 그리고 1층 탑신 정면에는 '臥塔起立人道偶合三層己巳厥功居甲'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공우탑 설화 지금으로부터 약 4백 년 전. 이 땅에 침입한 왜구들은 많은 절에 불을 지르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노략질해 갔다. 왜구의 불길은 의상대사가 화엄대학지소를 열었던 계룡산의 천년 고찰 갑사에까지 옮겨져 천 여 칸의 화엄대찰이 일시에 잿더미로 화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이 평정된 후 뿔뿔이 흩어졌던 스님들은 폐허가 된 절을 찾아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보게, 학인들이 이렇게 찾아드니 아무래도 중창불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네.』 『시중 살림도 살림이지만 마을 신도들도 난리에 시달려 모두 생활이 어려운데 불사가 여의할까?』 난을 피해 피난을 가지 않고 절을 지킨 인호, 경순, 성안, 병윤 네 스님은 갑사를 다시 중창하여 지난날처럼 많은 학인 스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도량을 이루기로 의견을 모으고 모두 탁발에 나섰다. 어느 날 해질 무렵 동쪽으로 길을 떠난 인호 스님은 어디선가 절박한 듯 울어대는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 울음소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군.』 인호 스님은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 가보니 고삐가 소나무에 칭칭 감긴 어미소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고 옆에는 송가지 한 마리가 어미소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는 듯 「음메에∼」거리며 소나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스님은 소의 고삐를 잘라서 소를 구해 주었다. 『자 이제 시원하지? 마음 놓고 풀을 뜯어 먹어라.』 소를 구해준 후 스님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스님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탁발하기 어느덧 7년. 인호 스님을 비롯한 네 명의 스님들은 고픈 배를 주리며 비바람 풍랑 속에서 구한 시주금을 한데 모아 대웅전 건립 불사를 시작했다. 목수의 손길이 바빠지면서 법당이 제법 그 모양새를 드러내게 되자 스님들은 흐뭇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일시적이었다. 서까래를 얹어야 하고 아직도 법당이 완성되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계획한 공사금이 예산보다 훨씬 부족했다. 스님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불사를 중단하고 다시 시주에 나선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러던 어느 날 밤, 인호 스님은 소 한 마리가 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인부들이 못 들어오게 내몰았으나 소는 막무가내로 들어와 인호 스님 앞에 멈췄다. 『스님,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저는 스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이렇게 왔사옵니다. 법당 건립 불사를 제가 도와드릴 것입니다.』 소는 이렇게 말하고는 느릿느릿 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잠을 깬 인호 스님은 하도 생생해서 다시 꿈 속의 소를 되살려 보았다. 『아, 바로 그 소였구나!』 인호 스님은 몇 년 전 시줏길에 구해준 소 생각이 떠올랐다. 스님이 문밖으로 나서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꿈에 본 소가 스님을 기다리기나 한 듯 문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소는 스님을 쳐다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3일 후 서까래를 한 마차 싣고 왔다. 다시 3일 후, 이번에는 기와를 가득 싣고 왔다. 소의 도움으로 대웅전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법당 마루만 깔면 불사는 완공을 볼 수 있었다. 『마루는 단단한 향나무가 좋은데…』 『향나무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번번이 소한테 신세만 질 수 없으니 이번엔 우리들이 직접 탁발에 나서도록 하세.』 엣부터 울릉도 향나무와 백두산 향나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은 스님들은 2명씩 짝을 지어 한편은 백두산으로 다른 한편은 울릉도로 떠났다. 백두산에 도착한 스님들은 향나무를 구하긴 했으나 운반할 일이 걱정이었다. 인호 스님과 경순 스님이 서로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미풍이 일더니 그 바람을 타고 온 듯 갑자기 소가 나타났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운반해 드릴 것입니다. 어서 이 나무를 제 등에 얹으세요.』 소는 마치 무쇨로 된 듯 그 무거운 나무를 지고도 끄떡없이 훌쩍 가버렸다. 절에 와 보니 소는 어느새 향나무를 절에 실어다놓고 또 나가는 것이었다. 소는 다시 울릉도에 나타났다. 향나무를 등에 진 소는 바다를 헤엄쳐 건너갔다. 무쇠 같던 소도 여러 차례 걸쳐 바다를 오가며 향나무를 운반하더니 지쳤는지 입가에 흰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스님들이 먹이를 주었으나 소는 먹지도 않고 여러 차례 쓰러지면서도 쉴새없이 울릉도 향나무를 뭍으로 옮긴 후 계룡산 불사의 현장까지 무사히 운반을 마쳤다. 필요한 향나무가 다 마련되자 목수들은 나무를 켜고 다듬어 법당 마루를 깔았다. 법당 안에는 은은한 향내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향나무 운반을 마친 후 지쳐 쓰러진 소는 영 일어나질 못했다. 법당 불사가 완공되던 날, 인호 스님 등 네 명의 스님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소에게로 갔다. 소는 큰 눈을 껌벅이며 스님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 스르르 눈을 감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스님들은 눈물을 흘리며 소의 무덤을 잘 만들어준 후 왕생극락을 빌었다. 『아무래도 소는 우리 절과 전생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을 걸세. 그리고 그 소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법당을 중창할 수 있었겠나. 후세에까지 소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우세.』 스님들은 절 입구에 소의 공을 칭송하는 3층탑을 세우고 「공우탑」이라 명했다. 지금도 갑사로 오르다 보면 중창리에 석탑이 하나 서 있으니 이 탑이 바로 공우탑이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 금계암에 새겨진...암 자체를 안찍어서 ㅡㅡㅋ;;;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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