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에서 동학사와 정반대 정도에 위치한 신원사..절도 절이지만 중악단이란 곳도 들려보고 싶어서 방문한..
절 자체의 규모는 동학사보단 좀 작지만 역시 점차 확장하고 있는 것 같다.

해우소의 벽면...아기자기한게 굿 ㅎㅎ

다니다보니 남긴 감도 많고...거의 통째로 놔둔 나무들도 있던데 왜그런지 미지수..

대웅전
조선 1876년(고종 13)에 보련(寶蓮)화상이 조영한 신원사의 중심 불전으로 아미타삼존을 모시고 있으나 ‘大雄殿’이라
쓴 현판을 걸고 있다. 1989년에 보수된 바 있다. 계룡산 연천봉을 주산으로 하여 동쪽으로 약간 돌아앉은 남향이다.
2단의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위치하고 있다.
도리통 3간, 양통 3간으로 도리통은 3간 모두 주간(柱間)을 동일하게 설정하였다. 양통 역시 3간의 주간을 거의 동일하게
설정했으나 도리통의 주간에 비해 좁혀 전체 평면은 장방형이다. 정면은 3간 모두 사분합문을 달아 개방시켰고, 양 측면에는
전면 툇간 중앙에 외여닫이문을 두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후면에는 어간을 제외한 양 협간에 두 짝의 여닫이창을
달았음이 특징이다. 또한 전체 벽을 목조의 판벽으로 하였음도 이 건물이 지니는 특성이다. 건물 내부의 불단을 후벽에 붙여서
설치했음도 이 건물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불단 앞의 공간을 넓게 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사용한 외벌대이며, 초석 역시 막돌을 이용하고 있다. 기둥은 모두 원주로 민흘림을 주었으며, 일부 기둥은
약간 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필요한 단면 크기를 충족시킬 수 있는 목재를 구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귓기둥은
다른 기둥에 비해 굵은 것을 사용해 건물의 윤곽을 두드러지게 했고, 매우 약하기는 하지만 귀솟음을 둔 것으로 보인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으며, 평방 위에 외1출목, 즉 외3포의 공포를 올렸다. 외3포의 공포 구성은 주심포식이라
할 수 있으나 평방을 사용하고 도리통 각 주간에 2개, 양통 각 주간에 1개의 주간포를 두었다. 각 공포의 구성은 주심포식을
따르되 공포의 배치는 다포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말기에 사찰건축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이다. 사찰의 경제력이
미약했으므로 조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불전의 장엄을 최대한 베풀고자 한데서 나타난 시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주심포에는 기둥에 끼워서 평방과 주두까지 감싼 안초공을 두었다. 평방 위에 주두를 두었으며, 그 위에 제1단 살미와
주심소첨을 결구했고, 그 위에 제2단 살미와 주심대첨 및 외1출목 첨차를 결구했다. 제1단 살미는 앙서형으로 상부에 연꽃을
조각해 장엄을 더하였고, 제2단 살미는 수서형으로 초각했다. 첨차는 모두 단부를 직절, 하부를 사절한 교두형이다.
한편 주심대첨은 위에 소로를 두지 않고, 상면이 직접 주심도리받침장여를 받도록 했음이 특징이다. 살미 내부는
양봉형으로 하여 보를 받도록 하였다. 제2단 살미 위에는 보를 두었는데, 보머리는 단면을 거의 줄이지 않고 외부까지
노출되었으며, 그 끝에 봉취형을 조각해 끼웠다. 주간포도 주심포와 거의 비슷한 구성이나 안초공이 없고 보가
놓일 위치에 운공을 놓았으며, 초제공과 이익공, 삼운공의 내단에 각각 독립적인 초각을 하였음이 다른 점이다.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러 사찰 불전의 공포 구성에 나타난 새로운 변형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영원전
일반 사찰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인 '영원전'은 산신(山神)과 더불어 제영의 근원이다.
이 영원전은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 '명부전(冥府殿)'을 이르는 말이다.
영원전은 대웅전 앞마당의 동쪽에 서향해 위치하고 있다.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건물로 명부전에 해당한다.
조선 왕실과 관련된 건물로 영원전이라는 전각의 명칭은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신원사만의 특징이다.
영원전의 창건은 조선 태조 3년(1394년) 무학대사가 신원사를 중창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영원전은
1982년에 원융스님에 의해 조영된 것이다.
정면 어간의 ‘靈源殿’이라 쓴 현판에는 ‘辛卯’라는 간지(干支)가 명기(銘記)되어 있는데, 1891년에 해당한다.
고종 13년(1876년)에 보련(寶蓮)화상이 중건하고 고종 22년(1885년)에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한 후에 씌어진 것으로
1982년에 영원전을 새로이 중건하면서 옛 현판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2층의 축대 위에 지었으며, 평면은 도리통 3간, 양통 2간이다. 정면 3간에는 모든 간에 걸쳐 띠살의 사분합문을 달았고
측면과 후면은 모두 벽을 들였다. 원통형의 다듬돌 초석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양 측면 중앙의 것이 방주인 것을
제외하면 모두 원주로 세장한 편이며 흘림을 두지 않았다.
공포는 이익공식이나 일반적인 이익공 짜임과는 달리 상당한 변형이 이루어졌다. 기둥에는 세 개의 부재를 끼워놓아
매우 높게 만들고 앙서형 2개를 초각하고 각각의 앙서 위에는 연꽃과 연봉을 새겨 장엄을 더하였다. 주두 위에는 이익공과
행공을 직교시켜 결구했다. 이익공은 연꽃을 새긴 앙서형으로 초각했다. 행공은 교두형이나 부재의 단면을 높여 하면이
창방과 맞닿도록 하였다. 익공의 내부는 3단으로 나누어 연봉과 연화를 초각했다. 기본적인 구조는 이익공식이나 초익공을
여러 단으로 구성함으로서 변형을 시켰고, 초각은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모두 혼용함으로서 화려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보머리는 건물 외부로 노출되었고, 별도의 부재로 봉취형을 초각해 끼웠다.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간(通間)으로 구성했으며, 가구는 무고주5량가이다. 지붕은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전체에 우물마루를 깔았고, 우물천장는 경사지게 가설하였다. 건물 내외에는 가칠과 긋기 및 모로단청을 하여 장엄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대웅전이나 영원전 모두 심히 심심한...ㅎㅎ


날씨가 꾸덕꾸덕..

요사채?? 모습이 좀 특이해서 한컷..

대웅전 앞 오층석탑
1989년 운담스님이 조영한 5층석탑은 대웅전 앞마당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990년 3월에 미얀마에서 4과, 태국에서 3과
모두 7과의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셔다 봉안하였다고 한다. 대웅전과는 종축을 맞추고, 마당 동쪽의 영원전과는 횡축을
맞춤으로서 기존의 건물에 맞추어 마당의 중앙에 배치하고자 의도하였다. 탑의 좌우에는 석등 1기씩이 있는데, 탑과 함께
조영한 것으로 탑과 횡축을 맞추어 배치하였다. 오층석탑은 신라계 석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기법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탑 앞에는 석조의 단을 마련하고 석조 촛대를 올려놓았으며, 그 앞에 역시 석조의 불전함을 두고 돌향로를 올려놓았다.
기단은 단층으로 지새석을 두 단으로 올린 위에 우주를 새긴 면석을 두고 2개의 석재를 사용한 갑석을 덮었다.
갑석은 상면에 구배를 두었고, 한 단의 쇠시리를 두어 탑신받침을 이루도록 하였다. 1층탑신은 1개의 석재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네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다. 옥개석 역시 1개의 석재로 만들었다. 층급받침은 4단이며, 처마는 하면을
직선으로 만들고 산면은 양 끝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반곡되도록 하여 추녀를 이루도록 하였다. 옥개석의
처마 끝 두께는 가는 편이어서 날렵함이 느껴진다. 지붕의 물매는 완만한 편이고 상부에 한 단의 쇠시리를 두어
2층의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2층 이상의 탑신과 옥개석도 모두 1층과 동일한 형식이다. 5층 옥개석 위에는 한 단의
쇠시리를 둔 위에 노반을 올렸다. 노반 위에는 복련형을 올린 위에 4단의 보륜을 하나의 석재에 새긴 다음 앙련으로
마감하였다. 비교적 단순한 형식의 상륜인데, 철제의 찰주를 이용하지 않고 석재만으로 구성했다는 점이 특성이다.
탑신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체감을 이루고 있다. 2층의 탑신은 1층에 비해 폭과 높이를 모두 줄였다. 3층 이상은 높이는
거의 줄이지 않고 폭만 줄이고 있는데, 4층을 3층에 비해 급격히 줄여 비례에 어색함이 느껴진다. 돌의 표면 가공은
비교적 충분한 도두락 가공을 하여 근래에 조영된 석탑으로서는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쇠시리를 비롯해
옥개석의 층급받침, 우주의 조각 등 턱진 부분의 모서리가 거의 직각을 이루고 있어 경직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20년정도 밖에 안됐는데 꽤 오래된 것 처럼 생겼지...ㅡㅡ;;

어딘가의 게임에서 본 것 같은 느낌? ㅎㅎ

계룡선원
정면 6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서북을 향해 금잔디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린 이 건물은
1982년 임술년 원융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창문이 특이해서...

불교계가 여전히 좀....
절 자체의 규모는 동학사보단 좀 작지만 역시 점차 확장하고 있는 것 같다.

해우소의 벽면...아기자기한게 굿 ㅎㅎ

다니다보니 남긴 감도 많고...거의 통째로 놔둔 나무들도 있던데 왜그런지 미지수..

대웅전
조선 1876년(고종 13)에 보련(寶蓮)화상이 조영한 신원사의 중심 불전으로 아미타삼존을 모시고 있으나 ‘大雄殿’이라
쓴 현판을 걸고 있다. 1989년에 보수된 바 있다. 계룡산 연천봉을 주산으로 하여 동쪽으로 약간 돌아앉은 남향이다.
2단의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위치하고 있다.
도리통 3간, 양통 3간으로 도리통은 3간 모두 주간(柱間)을 동일하게 설정하였다. 양통 역시 3간의 주간을 거의 동일하게
설정했으나 도리통의 주간에 비해 좁혀 전체 평면은 장방형이다. 정면은 3간 모두 사분합문을 달아 개방시켰고, 양 측면에는
전면 툇간 중앙에 외여닫이문을 두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후면에는 어간을 제외한 양 협간에 두 짝의 여닫이창을
달았음이 특징이다. 또한 전체 벽을 목조의 판벽으로 하였음도 이 건물이 지니는 특성이다. 건물 내부의 불단을 후벽에 붙여서
설치했음도 이 건물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불단 앞의 공간을 넓게 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사용한 외벌대이며, 초석 역시 막돌을 이용하고 있다. 기둥은 모두 원주로 민흘림을 주었으며, 일부 기둥은
약간 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필요한 단면 크기를 충족시킬 수 있는 목재를 구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귓기둥은
다른 기둥에 비해 굵은 것을 사용해 건물의 윤곽을 두드러지게 했고, 매우 약하기는 하지만 귀솟음을 둔 것으로 보인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으며, 평방 위에 외1출목, 즉 외3포의 공포를 올렸다. 외3포의 공포 구성은 주심포식이라
할 수 있으나 평방을 사용하고 도리통 각 주간에 2개, 양통 각 주간에 1개의 주간포를 두었다. 각 공포의 구성은 주심포식을
따르되 공포의 배치는 다포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말기에 사찰건축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이다. 사찰의 경제력이
미약했으므로 조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불전의 장엄을 최대한 베풀고자 한데서 나타난 시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주심포에는 기둥에 끼워서 평방과 주두까지 감싼 안초공을 두었다. 평방 위에 주두를 두었으며, 그 위에 제1단 살미와
주심소첨을 결구했고, 그 위에 제2단 살미와 주심대첨 및 외1출목 첨차를 결구했다. 제1단 살미는 앙서형으로 상부에 연꽃을
조각해 장엄을 더하였고, 제2단 살미는 수서형으로 초각했다. 첨차는 모두 단부를 직절, 하부를 사절한 교두형이다.
한편 주심대첨은 위에 소로를 두지 않고, 상면이 직접 주심도리받침장여를 받도록 했음이 특징이다. 살미 내부는
양봉형으로 하여 보를 받도록 하였다. 제2단 살미 위에는 보를 두었는데, 보머리는 단면을 거의 줄이지 않고 외부까지
노출되었으며, 그 끝에 봉취형을 조각해 끼웠다. 주간포도 주심포와 거의 비슷한 구성이나 안초공이 없고 보가
놓일 위치에 운공을 놓았으며, 초제공과 이익공, 삼운공의 내단에 각각 독립적인 초각을 하였음이 다른 점이다.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러 사찰 불전의 공포 구성에 나타난 새로운 변형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영원전
일반 사찰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인 '영원전'은 산신(山神)과 더불어 제영의 근원이다.
이 영원전은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 '명부전(冥府殿)'을 이르는 말이다.
영원전은 대웅전 앞마당의 동쪽에 서향해 위치하고 있다.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건물로 명부전에 해당한다.
조선 왕실과 관련된 건물로 영원전이라는 전각의 명칭은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신원사만의 특징이다.
영원전의 창건은 조선 태조 3년(1394년) 무학대사가 신원사를 중창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영원전은
1982년에 원융스님에 의해 조영된 것이다.
정면 어간의 ‘靈源殿’이라 쓴 현판에는 ‘辛卯’라는 간지(干支)가 명기(銘記)되어 있는데, 1891년에 해당한다.
고종 13년(1876년)에 보련(寶蓮)화상이 중건하고 고종 22년(1885년)에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한 후에 씌어진 것으로
1982년에 영원전을 새로이 중건하면서 옛 현판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2층의 축대 위에 지었으며, 평면은 도리통 3간, 양통 2간이다. 정면 3간에는 모든 간에 걸쳐 띠살의 사분합문을 달았고
측면과 후면은 모두 벽을 들였다. 원통형의 다듬돌 초석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양 측면 중앙의 것이 방주인 것을
제외하면 모두 원주로 세장한 편이며 흘림을 두지 않았다.
공포는 이익공식이나 일반적인 이익공 짜임과는 달리 상당한 변형이 이루어졌다. 기둥에는 세 개의 부재를 끼워놓아
매우 높게 만들고 앙서형 2개를 초각하고 각각의 앙서 위에는 연꽃과 연봉을 새겨 장엄을 더하였다. 주두 위에는 이익공과
행공을 직교시켜 결구했다. 이익공은 연꽃을 새긴 앙서형으로 초각했다. 행공은 교두형이나 부재의 단면을 높여 하면이
창방과 맞닿도록 하였다. 익공의 내부는 3단으로 나누어 연봉과 연화를 초각했다. 기본적인 구조는 이익공식이나 초익공을
여러 단으로 구성함으로서 변형을 시켰고, 초각은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모두 혼용함으로서 화려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보머리는 건물 외부로 노출되었고, 별도의 부재로 봉취형을 초각해 끼웠다.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간(通間)으로 구성했으며, 가구는 무고주5량가이다. 지붕은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전체에 우물마루를 깔았고, 우물천장는 경사지게 가설하였다. 건물 내외에는 가칠과 긋기 및 모로단청을 하여 장엄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대웅전이나 영원전 모두 심히 심심한...ㅎㅎ


날씨가 꾸덕꾸덕..

요사채?? 모습이 좀 특이해서 한컷..

대웅전 앞 오층석탑
1989년 운담스님이 조영한 5층석탑은 대웅전 앞마당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990년 3월에 미얀마에서 4과, 태국에서 3과
모두 7과의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셔다 봉안하였다고 한다. 대웅전과는 종축을 맞추고, 마당 동쪽의 영원전과는 횡축을
맞춤으로서 기존의 건물에 맞추어 마당의 중앙에 배치하고자 의도하였다. 탑의 좌우에는 석등 1기씩이 있는데, 탑과 함께
조영한 것으로 탑과 횡축을 맞추어 배치하였다. 오층석탑은 신라계 석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기법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탑 앞에는 석조의 단을 마련하고 석조 촛대를 올려놓았으며, 그 앞에 역시 석조의 불전함을 두고 돌향로를 올려놓았다.
기단은 단층으로 지새석을 두 단으로 올린 위에 우주를 새긴 면석을 두고 2개의 석재를 사용한 갑석을 덮었다.
갑석은 상면에 구배를 두었고, 한 단의 쇠시리를 두어 탑신받침을 이루도록 하였다. 1층탑신은 1개의 석재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네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다. 옥개석 역시 1개의 석재로 만들었다. 층급받침은 4단이며, 처마는 하면을
직선으로 만들고 산면은 양 끝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반곡되도록 하여 추녀를 이루도록 하였다. 옥개석의
처마 끝 두께는 가는 편이어서 날렵함이 느껴진다. 지붕의 물매는 완만한 편이고 상부에 한 단의 쇠시리를 두어
2층의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2층 이상의 탑신과 옥개석도 모두 1층과 동일한 형식이다. 5층 옥개석 위에는 한 단의
쇠시리를 둔 위에 노반을 올렸다. 노반 위에는 복련형을 올린 위에 4단의 보륜을 하나의 석재에 새긴 다음 앙련으로
마감하였다. 비교적 단순한 형식의 상륜인데, 철제의 찰주를 이용하지 않고 석재만으로 구성했다는 점이 특성이다.
탑신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체감을 이루고 있다. 2층의 탑신은 1층에 비해 폭과 높이를 모두 줄였다. 3층 이상은 높이는
거의 줄이지 않고 폭만 줄이고 있는데, 4층을 3층에 비해 급격히 줄여 비례에 어색함이 느껴진다. 돌의 표면 가공은
비교적 충분한 도두락 가공을 하여 근래에 조영된 석탑으로서는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쇠시리를 비롯해
옥개석의 층급받침, 우주의 조각 등 턱진 부분의 모서리가 거의 직각을 이루고 있어 경직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20년정도 밖에 안됐는데 꽤 오래된 것 처럼 생겼지...ㅡㅡ;;

어딘가의 게임에서 본 것 같은 느낌? ㅎㅎ

계룡선원
정면 6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서북을 향해 금잔디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린 이 건물은
1982년 임술년 원융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http://www.koreatemple.net/에서 발췌-
창문이 특이해서...

불교계가 여전히 좀....

덧글
그래도 무지하게 추웠네요;; 담주엔 꼭 산에 가고 싶은데 --;
산에서 잘하세요. 힘들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는 것도 있다던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