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때는 엄청나게 사람이 많이 몰리니 그 전주면 그래도 꽃도 핀 걸 보고 사람도 별로 없겠지....했습니다.
꽃이야 강가와 마을에 대략 반정도는 피어서 만족했습니다만...

사람은 엄청 나더군요. 주말이긴 하지만 축제 한주 전이고 해가 질 정도로 늦은 시간이라 괜찮으리라 생각했건만 ㅠㅠ
걸어가는게 더 빠르겠더군요. ㅎㄷㄷ..

광양 다암 섬진진터 석비좌대
섬진진터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군사를 매복 주둔시킨 곳으로, 선조 36년(1603)에는 도청창이란 창고를
설치하고 민간인 자원병으로 구성된 모군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숙종 31년(1703)에는 진으로 승격시켜 통영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직할진이 되었다가 고종 32년(1895)갑오개혁 때 폐쇄되었다. 예전에는 석비좌대가 17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4기만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섬진진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수군별장들의 공적비 좌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좌대의 크기는 길이 173cm, 폭 105cm, 높이 72cm이며, 등에는 비신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가로 44cm
세로 15cm, 깊이 10cm의 홈이 파여져 있다. 석조 두꺼비상은 치아가 빠진 입모양, 간략한 발 모습, 독특한 머리모양으로
투박한 조선시대 조각기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두꺼비 상인지 전혀 몰랐던;; 두꺼비가 이빨도 있었단 말인가...

수월정
광양출신으로 조선 선조때 나주목사를 지낸 정설이 만년을 소일할 뜻으로 1573년에 세웠던 정자인데, 이곳의 멋진 풍경과
정자의 아름다움에 반한 송강 정철은 수월정기란 가사를 지어 칭송하여 노래했고, 선조때 형조좌량을 지낸
수은 강항 또한 수월정 삼십영이란 시조 30수를 지어 노래할 정도로 아름다운 정자였다.
현재의 수월정 모습은 1999년 광양시에서 정비하였는데, 그 규모를 살펴보면 정면, 측면 각 1칸 3X3m로 바닥면적이
9m제곱이고, 구조는 종도리, 초익공, 사모정, 모임지붕 홑처마인데 주변 지형과 바람의 영향을 적절히 고려하여
높은 지붕 위에 소와를 깔고 용마루 중앙에 찰주를 설치, 화강석 절병통으로 마감, 구조적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우아하고 단아한 건축미를 볼 수 있다. 정자 주변에는 섬진강의 이름이 두꺼비전설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리기 위해 시에서 화강석 원석으로 두거비 기단과 나룻배 문양을 조각하여 설치한 섬진간 유래비와 1971년 정설의
후손들이 수월정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수월정 유허비가 있다.
송강 정철의 수월정기 중
달빛이 비추니 금빛이 출렁이며 그림자는 잠겨서 둥근 옥과 같으니
물은 달을 얻어 더욱 맑고 달은 물을 얻어 더욱 희니
곧 후(정설)의 가슴이 맑고 투명한 것과 같다.
-안내문에서 발췌-
너무 많이 손본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그나저나 섬진강 유래가 두꺼비에서 왔다는데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오오..

강을 끼고 있고 중간정도여서 그런가...지리적으로 해남이 더 아래쪽이고 바다가임에도 아직 안피었는데
광양은 슬슬 전성기니.....흠흠..


강가쪽..그리고 아래쪽일수록 더 잘 핀 것 같더군요 ^^ 지금쯤이면 어디를 막론하고 만개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한파가 걸리긴 하지만;;

늦어서 청매실 농원까지 올라가 보지는 않았지만 입구에서 옆길이 하나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 좋은 정자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때는 아직 길을 덜 깔았던데 축제까지는 완성시켰겠죠? ㅎㅎ

그래도 약간 높으니 덜핀;;

전망은 좋습니다. ㅎㅎ



내려와서 본 정자..해가 거의 져서 어두운게 아쉬운..

축제 전이어도 부스는 설치하여 축제나 다름없었습니다. 계속 방송(?)도 하던데 사람도 ㅎㄷㄷ;;





생각보다 꽤 많이 피어 더 좋았습니다. 다만 서쪽으로 산이 있으니 일찍가서 둘러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해가 일찍 지는데다가 산으로 넘어가니 낙조도 볼 수 없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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