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연못] 낙동강의 발원지를 찾아서 by 타누키




꼭 찾아간건 아니지만 시내를 지나다보니 풍악소리가 울려퍼지길레 한번 들려봤습니다.
황지연못인건 나중에 알았;; 공연은 시간이 있어 금방 끝난는데 지방체전 축하공연인 것 같더군요.
나중에 알아보니 낙동강 발원제도 했다는데 좀 아쉽기도...


밤인데다가 공원에 조명이 너무 없어 장노출로 제일 큰 연못만...
시가지 한가운데 있어 마을사람들이 애용하며 돌에 그려진 낙서들을 보면 재밌습니다.
쪼이고 장노출로 했는데도 왜 수면은 안갈라졌는지 흠흠...용출 수량이 많아서 그런가;;


황지연못의 전설
황지3동 시가 중심부에 위치하며 둘레가 100m인 상지, 50m인 중지, 30m인 하지로 된 3개 못으로 나뉘며
상지 남측에 깊이를 잴 수 없는 수굴이 있어 수원이 된다. 수량은 가뭄에도 장마에도 변함없는 1일 약 5000톤이
용출되며 수온 또한 상온 15도를 유지하는 해발 700m 이지역 주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으로
전국 최적의 오염되지 않은 상수원이다. 고지도를 비롯한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옛문헌에 의하면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옛 신라문화와 가야의 번영을 이룩하며 한민족과 숨결을 함께한 젖줄 1300리 낙동강을
오늘도 쉼없이 흘려 보내는 것이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올렸다."고 기록된 이 못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못엔 원래 황씨성을 가진 황씨가의 옛터로서 주인 황씨는 많은 재산에 풍족하게 살았으나
돈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 노랭이였다. 어느 봄날 황부자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는 시주하기를 거절했으나 노승은 물러나지 않고
거듭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했다. 이에 화가 치민 황부자는 쇠똥을 한가래 퍼서 시주바랑에 넣어주며
"이거나 받아가라"고 하였다. 노승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아기를 업고
방을 찧던 며느리가 이를 보고 부끄러히 여겨 시아버지 몰래 자기가 찧은 쌀한바가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해 올리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비렀으나 노승은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이 집은
이미 운이 다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노승의 뒤를 따라오시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며느리는 곧 집을 나서 송이재를 넘어
구사리(지금의 도계읍)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뇌성벽력과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에 깜짝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렸고 황부자의 집은 땅밑으로
꺼져내려가 간곳없고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하였다. 지금도 삼척군 도계읍 구사리 산마루에는 황지 쪽을
뒤돌아보며 아기를 업은 채 서있는 돌미륵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하며
함께 따라간 강아지도 돌이 되어 그 앞에 있다. 또한 그 때 집터는 지금의 상지이고 방아간 자리가
중지 변소터가 하지로 변했다하며 뇌성벽력과 함께 변해버린 연못(집터)에서 유래된 지명이 황지인 것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고증(?)을 거쳐 만들어진 입상...실제로 돌미륵이 있는지는 검색 상 찾기가 좀 힘든데 과연 어떠한 모습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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