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의도] 우중충하다. by 타누키


하의도에 다녀왔습니다.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결국 같은 제목밖에는 생각이 안나네요.
그래도 그때와 같은 분노는 없다보니 같은 단어도 좀 다르긴 합니다.
여행으로 다니다보니 목적이 이것만은 아닌지라 열심히 놀기도 했습니다만;;

뭐 이럴때마다 자꾸 쓰게 됩니다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빠도 아니고 까도 아닙니다.
노무현 정도부터 직접 정치에 참여했다고(응?) 할 수 있는데 그 이전의 정치가들에게는
사실 뭐라 평가하기도 힘든게 아닌가 싶더군요. 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평가가
더 무게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저런 사료들을 널어놓을 실력도 안되기도 하지만;;
후대의 평가는 결국 후대의 입장에서 행해지는 것일테니까요.
당대의 사람들이 더 직접적으로 시대에 휩쓸리고 우중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할수도 있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아예 목적을 가지고 정보를 취득하고 이야기하니.....
어차피 자신들도 당대를 이해하지 못(안)하면서 당대보고는 후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니 참..
물론 인터넷이나 기타 한정(응?)의 입장입니다만....

어쨌거나 항구의 조기..이날은 별로 없었는데 한바퀴 돌고 나왔더니 좀 늘더군요.
면사무소에 자리가 만들어졌다지만 그런 곳은 좀 불편한지라....
게다가 이날은 봉하마을에서 온다고 명계남 등이 돌아다니더군요.
뭐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검은색 양복입고 우르르 다니니;;
덕분에 점심을 한참 뒤에 먹어야했습니다. 안그래도 식당이 몇개 없는데 올킬 ㅎㄷㄷ


하의도 생애소리
섬지방 특유의 민속문화가 잘 남아있는 만가의 일종이며, 상례의식에서 상여를 운반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산 사람에게는 액이 들지 말고 복만 들기를 기원한다. 이별의 슬픔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도 담겨 있다.

지역에 따라 향두가, 상두가, 상부소리라고도 하는데, 하의도 주민들은 흔히 생애소리라고 불렀다. 상여의 운반은
여러 사람이 호흡과 발을 잘 맞춰야 하므로 일종의 노동요이기도 하다. 하의도 생애 소리에는 집을 떠날 때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내릴 때, 개천이나 다리를 건널 때, 장지에 도착할 때 등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불렀던
섬마을 주민들의 독특한 가락과 사설이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다.

모든 상황의 변화가 설소리꾼의 자~자~자~하는 소리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남도문화제 출연작은
곽운상, 상여메기, 하직소리, 중중모리 소리, 자진모리 소리, 다리 건너는 소리, 가래소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항구에 바로 있는데 이럴 때 보니 또....그런데 왜 생애소리라고 하지 않았는지...


하의도 자체가 어촌이라기보다는 농촌에 가깝다고 합니다.
나중에 쓰겠지만 몇백년의 농민운동을 해온 곳이라고 하니 어떻게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반골의 '왜'라는 물음을 가질 수 있게 키워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석에 보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다보니 신종인플루엔자를 대비하여 손소독하는 보건의도 준비하고 있더군요.


자신들을 찍고 있다 했더니 역시나 정치인들....;; 일반인들은 좀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오더군요.
그래도 목포도 그렇고 노무현 때 보다는 전체적으로 현수막도 적고(섬을 나와보니 늘었긴 했습니다만..)
분위기도 그렇고 역시 천수를 다했기 때문인지 꽤 다른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영결식때도 보니 사람도 정말 적고....젊은세대에겐 김대중은 역시나 먼 느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보측에선 거의 적으로 인식하기도 했으니 민주화에 대한 것이 당연한 현세대에겐 그의 공은 멀리있기만 하겠죠.


간단히 예를 표하고...직접 참여를 할 수도 없었고 위에 썼던 이유때문에
김대중에 대한, 그의 대통령 기간을, 그의 전 민주화 경력을 뭐라 말하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다만 그로 인해 정치란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라고 느끼게 된 바가 있는지라 그것만이 기억이 나네요.

전체기숙사형 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는 시험이라 보통 밤10시정도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자율(어?)학습시간이
12시까지 할 사람은 식당에서 공부하게 해줬(아?) 그날따라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선결과 때문이었습니다. 기숙사형 학교였기 때문에 전국의 학생들이 모였고
그만큼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중엔 정치인을 꿈꾸던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잘되었으련지....

는 삼천포고 과거의 정치이야기가 주인 현재 인터넷과는 달리 아무래도 주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적은
학생들로서 그당시만을 이야기하며 각 후보의 지지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이회창을 지지해도 수꼴같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고 김대중을 지지해도 빨갱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죠.
아무래도 과거를 논하지 않는 만큼 현재보다 깊이 있게 바라볼 수야 없었겠지만.....그때의 태도들 만큼은
자꾸만 생각이 나네요. 뭐 추억이라 더 그렇겠습니다만....낮부터 티비로 보다가 결국 밤 늦게서야 라디오로
결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재까지도 겪어보지 못한(당원정도라야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으련지;;)
단체로서 정치를 느껴보며 개인으로서 느꼈으면 몰랐을 그 긍정의 힘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김대중으로서의 기억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상태에서
계속 자란 세대로서 과거에 억눌려있는 윗세대들과는 다른 경험들을 해왔기 때문에
20대 개새끼론 등이란 이야기들 역시 우리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다고 봅니다.
뭐 우리도 386이상 윗세대을 함부로 평하며 이해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난리법석이니 현시창이지만요.
우리보다 더 자유로운 아랫세대들이 계속 반복될 수록 바뀌어가리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로서는 지금 회자되고 있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남을 악으로 규정하는 행동을 하면서 어떻게 미국이 북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북은 악이 아니라는 미발표 연설문을 남기셨는지...결국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모든 것이 갈린진데
그것을 감안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결국 악에 속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너도 나도 모두 악~ 우왕ㅋ굳ㅋ 올킬~

어쨌든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계속 바쁘게 이용당하시겠지만
이젠 몸이라도 편히 쉬시겠죠.


생가야 덤으로...;; 계속 유지되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던 것을 다시 사와서 재정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저것 사진찍고 정치인들이 이동하며 보좌관들도 빠져나가니 정말.....사람이 없더군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도 쉽게 소비되어버리는 것을 보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 아쉽기만 하네요.
다만 생가를 방문하고 난 뒤, 하늘이 밝게 갠 것처럼 우중충한 날들은 결국 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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