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도솔암과 내원궁으로~ +진흥굴+장사송 by 타누키




도솔암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고 꽃무릇들이 반겨줬기 때문에 즐기며 갈 수 있었습니다.
가다보면 작은 굴이 있는데 진흥굴이라고 합니다.

진흥굴
숭불왕으로 유명한 신라 24대 진흥왕이 부처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땅인 이 곳에 의운국사를 시켜
선운사를 창건케하고, 왕위를 퇴위한 후 선운사를 찾아 수도했다는 암굴이다. 또한 진흥왕은 그의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이 굴 윗 산에 중애암을 그리고 만월대 밑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선운사 본당에서 서쪽으로 2km 지점에 위치한 이 굴은 길이 10m, 높이 4m의 동굴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선덕여왕에선 재위 중(맞던가...가물가물;;) 돌아가신걸로 되어 있더군요. ㅎㅎ


안은 다른 굴들과 마찬가지로 기도드리는 공간입니다.


안에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네요. 어떻게 이런 무늬로 파였으련지....
마치 일부러 낸 것 같이 아름답습니다.


장사송
반송으로 분류되며,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23m, 가슴높이의 둘레는 3.07m이며
높이 3m 정도에서 줄기가 크게 세 가지로 갈라져 있고, 그 위에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이 나무의 명칭을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 불려지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바로 바깥에 자리한 장사송..정말 큽니다.


극락보전
관음전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계의 맞배지붕이고 풍판이 세워진 목조기와집이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고 장엄이 없으며 수미단이나 닫집은 설치 되어 있지만
단청칠이 되어 있지 않음에도 화려하고 웅장하다. 천장은 우물반자이고, 마루는 우물마루이다.
안에는 아미타불이 단독으로 모셔져 있는데, 매우 작고 아담하다. 불화는 근래 제작된 여러 점이 있다.
아미타극락불탱이 후불탱으로 있고, 금어비구 동원(東園)이 조성한 칠성탱
금어 봉화(奉華), 소현(所賢), 창엽(昌燁) 등이 조성한 독성탱, 불기 2534년에 주지 정인 등이 조성한 신중탱 등이 있다.
내부에는 범종이 모셔져 았다.
-http://www.koreatemple.co.kr에서 발췌-


목조요사채
편액이 없는 요사채는 극락보전과 공양간 옆으로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에
주심포형식의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현재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http://www.koreatemple.co.kr에서 발췌-


계곡을 따라 들어왔기 때문에 산에 둘러쌓인 경관이 멋집니다.


나한전
조선말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고 나한, 즉 아라한을 모시는 곳이다. 아라한은 소승불교의 수행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를 지칭한다. 조선시대에 도솔암 용문굴에 살던 이무기가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인도에서 나한상을 들여와 안치하였더니 이무기가 사라졌으며
이후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건물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도솔암 삼층석탑
특별히 언급되는 바가 없어 아쉽습니다.
전체적인 도솔암에 대한 글이 있는데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 하네요.


나한전 석가모니불좌상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봉안하는 전각이기 때문에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목조에 채색되어 있는 석가모니불은 길상좌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양쪽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합장을 하는 자세로 협시를 이루고 있다.
-http://www.koreatemple.co.kr에서 발췌-


내원궁 일주문, 최근에 세운 듯한데 이후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진 내원궁까지 철계단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내원궁
도솔천 내원궁은 상도솔암으로도 부르며 1511년(중종 6)에 중창된 이래로 1694년 (숙종 20)과
1817년(순조17)에 각각 중수되었다. 이 건물은 기단 없이 둥근 주춧돌만 두었는데 기단이 없을 경우
건물이 낮아지므로 대신 주춧돌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전각의 크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원형주초에 두리기둥으로 된 초익공의 맞배지붕이고
겹처마의 목조기와집 건물이다. 편액은 ‘도솔천내원궁’으로 되어 있고 주련은 걸려 있지 않다.
문짝은 2분합, 4분합, 2분합으로 되어 있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고 외벽화는 화조화가 화려하다.

내부의 장엄한 법상 위에는 보물로 제280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두건형 금동지장보살상과
그 뒷면에 목각의 지장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까지 몇 차례 보수한 것이다.
서쪽 암벽 밑에는 석불이 새겨져 있다. 1986년 9월 9일에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http://www.koreatemple.co.kr에서 발췌-


고창 도솔암 내원궁 지장보살
지장보살좌상은 동 불상 표면에 도금한 불상으로 선운사 도솔암에 모셔져 있다.
머리에는 두건(頭巾)을 쓰고 있는데, 고려 후기의 지장보살 그림에서 보이는 양식이다.
이 보살상은 선운사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과 두건을 쓴 모습, 목걸이 장식, 밋밋한 가슴 표현 등에서
서로 닮았지만, 이마에 두른 띠가 좁아지고 귀를 덮어내리고 있지 않으며 용모 등에서 수법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지장보살은 다른 불상들과 달리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으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둥근 얼굴은 단아한 인상이며, 목에서 어깨로 내려가는 선은 부드럽다.
상체나 하체 모두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띠를 매고 배가 들어가는 등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옷은 배부분에서 띠매듭을 지었고, 다리에는 간략한 몇 가닥의 옷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앉은 자세는 오른발을 왼무릎에 올린 모양으로 발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들어 작은 수레바퀴 모양의 물건을 잡고 있다.

이 지장보살상은 고려 후기의 불상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우아하고 세련된 당대 최고의 작품이다.
여느 사찰처럼 명부전이 아닌 도솔천 내원궁에 모셔놓았는데, 이는 미륵신앙에 바탕을 둔 창건설화에서 연유한다.
높이는 96.6cm이며 보물 제280호로 지정되어 있다.
-http://www.koreatemple.co.kr에서 발췌-


도솔암 마애불
내원궁이 올라앉은 암반은 칠송대(七松臺)라 불린다. 그 절벽 한 면에 높이 17m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머리 부분은 암벽을 깊게 파서 새기고 어깨와 허리를 거쳐 내려오면서는
점차 깊이가 얕아져서 팔꿈치 아래부터는 선각으로 처리했다. 각이 진 얼굴에 도드라지게 표현된 눈은
양끝이 올라가 있고 입 또한 양귀를 눌러 꾹 다물고 있어 부처님다운 원만함보다는 위압적인 인상을 지녔다.

명치께에 있는 네모진 흔적은 부처님을 완성한 후 불경과 시주자의 이름 등을 적어 넣고 돌뚜껑을 닫은 뒤
백회로 봉한 자국이다. 여래상의 머리 위에는 누각식으로 된 지붕이 달려 있었는데 인조 20년(1648)에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지금 마애불의 머리 위에 뚫린 네모진 구멍들과 드문드문 끼여 있는 부러진 목재
쇠못 등은 그 흔적이다. 위압감을 주는 얼굴 표정과 대담한 선각 등으로 미루어보아 고려 시대 초 지방 호족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마애불로 여겨진다. 보물 제 1,200호로 지정(1994.05.02)되어 있다.

이 마애불은 동학농민운동 때 무장접주 손화중(孫化中)이 이 불상의 배에서 비결을 꺼낸 것으로 유명하다.
마애불좌상은 코를 제외하고 평면적인 얼굴이다, 윤곽선만 있는 치켜뜬 눈, 커다란 귀, 양각된 백호, 원추형 머리에
불분명한 육계 등이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방형의 상체와 하체는 마치 벽돌을 포개놓은 듯
유기적인 조화가 미흡하고 가부좌한 하체에 가만히 맞댄 두 손은 지나치게 커서 불합리한 신체비례를 보인다.
대좌는 2단의 하대를 갖춘 방형의 상현좌로 하단에는 중심에서 좌우로 벌어진 연꽃이 돌려져 있다.
조선시대 전기에 제작된 대형 마애불로 추정하고 있다.
-http://www.koreatemple.co.kr에서 발췌-

정말 거대하며 설명에 써져있다시피 곳곳의 구멍에 맞추어 지붕이 남아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진이나 그림이 남은 것도 아니니 복원하는 것도 무리겠지요. ㅠㅠ
명치에 얽힌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ㅎㅎ 이 바위 위에 내원궁이 세워져있어 대단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덧글

  • 2009/10/27 15:2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타누키 2009/10/27 16:15 #

    헛 감사합니다. 메일 보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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