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부암
고씨부인의 정개를 기리는 바위이다. 조선 후기 이 마을의 어부 강사철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센 풍랑으로 변을 당하였다. 그의 처 고씨는 며칠동안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 남편을 찾지 못하자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소복을 입고 이곳 나무에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자 홀연히 남편의 시체가
이 바위 밑에 떠올랐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중국 조아(조간의 딸로 조간이 강을 건너다가
급류에 빠져 죽자 70일 동안을 아버지를 찾아 헤매었다. 시체를 찾지 못하자
조아도 강물에 몸을 던졌는데 5일만에 아버지 조간의 시체를 안고
물 위에 떠올랐다 한다.)의 옛 일과 같다고 감탄하였다 한다.
이를 신통히 여긴 당신 판관 신재우는 고씨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이라는 글귀를 새겨
후대에 기리게 하였다. 또한 관에서는 이들 부부를 합장한 후 그 넋을 위로하고자
이 마을 주민들로 하여금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안내문에서 발췌-
바위 아래의 제사단으로 보입니다.

나무들 사이 난 길로 살짝 들어가보면 절부암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의 열녀들과 달리 시체를 되찾는 내용이 있는게 절부암 신화의 특징인데
조금은 씁쓸하네요.

다른 바위들에도 많이 새겨져있는데 무슨 말인지...

뒤쪽은 여관이나 모텔들이 잔뜩인데 상당히 을씨년스러운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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