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둘러보기 by 타누키




정면에서 찍은게 없네요. 이런;;; 전체적으로 배모양으로 생겨 재밌더군요.


라파엘호
이 배는 1845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이 제물포에서 상해로 가고 돌아올 때 탔던
무동력 목선(범선)으로 길을 인도하는 대천사 성 라파엘 이름을 붙인 배이다.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를 비롯한
13명의 일행과 함께 상해에서 이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심한 폭풍을 만나
표류하던 끝에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였고, 다시 전라북도 금강 하류 화진포(나바위)에
도착하여 한국 본토에 상륙하였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의 기록을 고증으로 하여 이 배를 복원하였고,
1999년 7월 31일, 김대건 신부 귀국 154년 만에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배의 길이 13.5미터, 너비 4.8미터, 깊이 2.1미터, 중량 27.2톤
-안내문에서 발췌-

이런 배로 중국까지 왕복이라.....ㅎㄷㄷ


안에는 순교자들이 받았던 형벌도구들이 우선 진열되어 있습니다.
주장 - 죄인을 때리는 붉은색의 몽둥이
태형대 - 대형이나 장형을 행할때 죄인을 엎드려 묶어놓고 집행하는 대
압슬형 - 수형자를 무릎꿇리고 묶은 다음 무릎 위에 목판이나 돌을 올리는 형
궤슬방두 - 방두 안에 무릎을 꿇게하고, 정강이 위로 나무막대를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태를 치는 형벌
행형도자(망나니칼) - 날이 둔하여 여러번 내려쳐야했고 김대건 신부님이 이런 칼로 참수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행형도
부제 때인 1845년 잠시 귀국했을 때 서울 돌우물골(석정동)에서 작성
죄인의 이송 형태
호송용 달구지에 태워가는 경우, 마소 위에 얹은 짚둥우리에 태워가는 경우,
오라로 묶어가는 경우 등이 있었다. 또 죄인들의 머리에는 보자기나 도포자락으로 만든
몽두 혹은 싸리나무나 짚(후대에는 얇은 철판) 등으로 만든 용수를 씌웠으며
목에는 넓은 칼(행차칼)을, 손에는 수갑을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성 김대건 신부가
포도청으로 압송될 때는 검은 보자기의 몽두를 씌웠고, 성 다블뤼(안 안토니오)주교가
서울로 압송될 때는 홍보를 씌웠다는 기록이 있다.

천주교 신자의 형장압송과 집행광경
마소 위의 짚둥우리나 달구지 위의 나무의자에 태워가는 경우도 있었고(선교사 성인이나
성 김대건 신부의 경우), 달구지 위에 세운 십자가에 팔과 머리를 묶어 가는 경우
(서소문 밖의 순교자들)도 있었다.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은 순교 성인들의 얼굴에는
회를 칠했고, 양팔은 등뒤로 잡아맸으며, 옷은 허리까지 벗겼고, 양쪽 귀는 각각 접어서
화살촉을 위로 가게 꿰었다. 서소문 밖의 순교자들은 옷을 벗긴 다음
나무토막을 턱밑에 받치고 목을 잘랐다.

주뢰형(주리형)
가위 주뢰는 두 무릎과 두 엄지발가락을 잡아매고 그 사이에 두개의 몽둥이를 끼워
종아리뼈가 활처럼 휘게하는 형벌이고, 줄주뢰는 양쪽 발가락을 잡아매고 다리 사리에는
굵은 몽둥이를 끼운 뒤 양쪽 무릎에 묶은 줄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형벌이다.
팔주뢰는 양팔을 등뒤로 엇갈리게 묶은 다음 양팔 사이에 몽둥이를 엇갈리게 끼워
양어깨가 접근하도록 했다가 놓았다가 하는 형벌이다. 집행자가 풋내기일 경우에는
뼈가 부러지거나 피나 골수가 튀어 오르게 된다.

학춤
죄인의 옷을 벗긴 다음 두손을 등뒤로 잡아맨 채 팔을 공중에 매달고, 네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등나무 줄기로 때리는 형벌, 몇분이 지나지 않아 거품을 머금은 혀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얼굴이 검붉게 변하므로, 잠시 쉬었다가 계속해야만 한다.

톱질
말총으로 꼰 밧줄을 넓적다리에 감은 뒤 두 사람이 반대 방향에서 톱질을 하듯이
잡아당겨 밧줄이 살을 파고 들어가 뼈까지 닿게하는 형벌, 때로는 삼각봉을 정강이에
받치고 톱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당시에 다른 죄인들에게도 행했던 형벌이지만 몰랐던게 많네요;;


턱뼈(복제)
미리내 103위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성 김대건 신부의 아래턱 뼈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옥중서한(회유문)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천주 무시지시(無時之時)로부터 천지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 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慰藉)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비록 주은(主恩)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해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背主背恩)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계 득죄(得罪)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밭을 심는 농부를 보건데 때를 맞추어 밭을 갈고 거름을 넣어 더위에 신고(辛苦)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씨를 가꾸어 밭 거둘 때 이르러 곡식이 잘 되고 영글면,
마음의 땀 낸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고 흠복할 것이요. 곡식이 영글지 아니하고
밭 거둘 때 빈대와 껍질만 있으면 주인이 땀 낸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 내고
들인 공부로써 그 밭을 박대하나니, 이같이 주 땅을 밭 삼으시고 우리 사람으로 벼를 삼아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 주사 자라고 영글도록 하여 계시니,
심판날 거두기에 이르러 은혜를 받아 영근 자 되었으면 주의 의자(義子)로 천국을 누릴 것이요.
만일 영글지 못하였으면 주의 의자로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으리라.

우리 사랑하온 제형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데로조차 성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나게 하신지라.

그러나 세상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 예수 승천 후 종도 때부터
지금까지 이르러 성교(聖敎) 두루 무수 간난(艱難) 중에 자라니, 이제 우리 조선이
성교 들어온 지 5-60년에 여러 번 군난으로 교우들이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난이
치성(熾盛)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너희들까지 환난(患難)을 당하니,
우리 한 몸 되어 애통지심이 없으며 육정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 돌아보신다 하고 모르심이 없어
돌보신다 하셨으니, 어찌 이렇다 할 군난이 주명(主命) 아니며 주상주벌(主賞主罰) 아니랴.

주의 성의(聖意)를 따라오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예수의 대장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

이런 황황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광영(爲主光榮)하고 주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여기 있는 20인은 아직 주은(主恩)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너희가 그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라.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지필(紙筆)로 다하리. 그친다.

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이런 난시(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主佑)를 빌어 삼구(三仇)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광영하고 여등(汝等)의 영원 대사를 경영하라.

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德功)를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사주구령사(事主救靈事)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만만 수치(修治)하여 성교회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義子)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矜憐)하실 때를 기다리라.

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는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親口)하노라. 부감목 김 안드레아.

세상은 온갖 일이 막비주명(莫非主命)이요 막비주상주벌(莫非主賞主罰)이라.
고로 이런 군난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위주(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려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 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번만번 바란다. 잘 있거라. 김 신부.

[출처] 김대건 신부님의 스물 한 번째 편지(마지막 회유문) (천주교 성모성심 성당)
작성자 perematthieu

25살의 나이라는데 지금과는 역시 많이 다르긴 다릅니다.
하악골과 치아 등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졌는데 불교의 사리같은 개념이려나요. 흠..


조선 최초의 사제, 김대건
1845년 상해에서 한국인 최초의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는 서울에서 잠시 사목한 뒤,
모친이 거주하던 용인으로 내려가 그 일대의 교우촌을 순방하면서 신자들을 돌보았다.
모든 활동은 신자들을 찾아다니는 박해자들과 비교자, 밀고자들의 눈길을 피하며
비밀리에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교우촌을 방문하여도 오래 머무를 수 없었고,
미사를 드릴 시간도 없었다. 밤중에 교우촌을 찾아 다녀야 하고 교우촌에 당도하면
복사를 시켜 교우들을 모은 다음, 벽에 고상을 걸고 성사를 준 뒤 곧바로 다른 교우촌으로
가야했다. 교우들은 신부님을 전송할 수도 없었고 집안에서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상복을 입은 사람이 보이면 위로하는 뜻으로 모두 머리를 숙이고 지나갔으므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조선에 입국하였던 선교사들은 이러한 상복을 입었다.
조선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상복을 착용하고 교우촌이나 은신처로 옮겨다녔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비오)는 충청도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시골에서 낮은 관직을 얻었던 그는 두 차례의 체포와 석방을 겪었고,
1805년에 다시 체포되어 1814년에 충청도 해미에서 옥사 순교하였으며,
1816년에는 종조부인 김종한(안드레아)마저 대구에서 참수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부친 김제준(이냐시오)은 이후에도 얼마동안 고향인 충청도 솔뫼
(현 충남 당진군 송산면 우강리)에서 거주하였으나, 다시 박해의 위험이 닥치게 되자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을 거쳐 경기도 용인의 산중으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였다.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용인의 골배마실(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과
이웃의 한덕골(용인시 이동면 묵리의 굴암)은 일찍부터 비밀 신앙 공동체인 교우촌으로
형성된 마을이었으므로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고 있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라파엘 호의 발자취, 개인적으로 기독교나 천주교가 자기 범위 내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요즘의 우려나 무례한 전도 등은 일반인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이야기로 봐 차치하고)
생각하기에 선교같은 이야기는 아무래도 일반인이 알기는 힘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박해 그런 것을 접한 것도 바람의 검심의 에피소드였던 것을 보면....(먼산;;)

순교하신 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경자(Venerabilis) 칭호, 11세에 의해 복자(Beatus) 품,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Sanctus) 품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황사영 백서
1801년 천주교회 박해 때 배론으로 피신하여 그곳 토굴에서 조선 천주교회의 박해 상에 대해
기록하며 도움을 청한 백서로서, 중국에 보내기 바로 전에 발각되어 사형을 받는다.
이로 인해 부인 정난주는 제주도로, 두살 난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된다.
-안내문에서 발췌-

배론....했더니 베론성지해서 예전에 다녀갔던 곳이더군요.
아래에 액자형태로 있던데 백서의 경우 복사본을 액자로 만들어 파는 경우도 있나봅니다.


순교자묘 십자가
황사평 순교자묘 이장 시 발굴한 십자가


김원영 신부의 수신영약
1901년에 쓴 천주교 안내에 대한 책으로서, 제주지방 풍습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


한국에서 쓰였던 주교님들의 물건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주교님 별 지팡이도 진열이..


휴대용 봉성체가방, 미사가방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이 참....
기념품도 파는데 김수환추기경님의 30cm정도 되는 정복입으신 인형도 팔더군요.
완성도가 상당해 보면 바로 알아볼 정도라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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