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 일제시대의 상흔이 있는 동백섬 by 타누키





탐조등 보관소
1938년 1월 27일 구 일본군에 의해 완공됐다.
원거리의 물체들을 탐색하거나 비추는 용도 또는 표지등의 용도로 쓰였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로
도달거리 약 7~9km까지 이르렀다. 탐조등은 장승포, 일운면 지세포
진해만, 쓰시마 쪽 방향에 설치하여 지심도로 접근하는
선박이나 사람들을 감시하고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탐조등 보관소는 포대나 탄약고처럼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쓰시마에 있는 탐조등 보관소와 닮은 두꺼운 철문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지금은 통(?)만 남아있는..
규모에 비해 안이 꽤 좁은데 딱 탐조등만 들어가게 생겼더군요.



지심도 구 일본군 방향지시석
망루나 발전소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지심도의 주변 지역을 표시한
방향지시석이며,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되었다.
이 공에는 총 6개의 지시석이 있었으나, 현재 제일 왼쪽으로 장승포방향
가덕도등대, 절영도, 쓰시마 남단 등 총 5개만 남아있다.
방향지시석의 총길이는 5m이며, 석축 높이 5cm, 넓이 20X30
기둥은 높이 30cm, 넓이 10X10이다. 또한 서치라이트 자리에서
방향지시석(우측)으로 35cm이며, 석축과의 거리는 12cm이다.
현 위치와 전등소,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었으며
주변을 관찰하거나 작전 지구 내에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하는데 이용되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반원형(?)의 자리에 가운데에 탐조등을 놓고
방향지시석 방향으로 트는 방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지시석이 워낙 작다보니 훼손이 많이 되었는데
옆에 다른 박스를 만들어서 보호해야 할 정도;;



구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
1938년 1월 27일 지심도의 포대가 준공되자 구 일본군의 포대진지임을
알리기 위하여 쿄쿠지쯔키를 게양했던 곳이다.
코쿠지쯔키는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나가는 햇살을
붉은 색으로 도안한 깃발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 구 일본육군국기로써
1889년 해군군함기로 사용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육해군이 함께 해체되면서 사라졌다가 1954년 이후부터
일본 자위대의 군대 깃발로 사용하고 있다. 이 깃발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게양대 위치는 당시 양지암 통신대
부산 영도 포대, 쓰시마 등지를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했다.
현 위치에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 망루를 따로 설치하여
주변 경계를 서기도 했다. 현재 게양대에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태극기를 게양한다고 되어 있지만 현재로서는
제 기능을 다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구 일본군 탄약고
1935년 11월 30일에서 1938년 1월 27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는 전통을 설치하였고, 탄약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약을 보관하고 있었다. 1936년 5월 7일 현재 38식 기관총 고사용구 38개
캐논포 탄환 10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할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 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 4곳 모두 정문은 부산쪽 방향이며
후문은 쓰시마 방향이다. 또한 모두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눈에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안내문에서 발췌-

좌측 끝인 해식절벽에서 다시 위로 돌아서 선착장으로 돌아오면서는
탄약고와 포대를 볼 수 있습니다.



탄약고 안은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정말 서늘하더군요.



구 일본군 지심도 포대
일본의 중국침략 2년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면방비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던 곳이다. 지심도 포대 설치는
1935년 11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분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1936년 4월 23일 일본육군축성본부는 지심도에 거주하고 있는
1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 같은 해 7월 10일 포대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축원기 등을 각각 배치했다. 총예산 1백 46만 5천원을 투여하여
군 막사, 초소, 경계표찰 등이 1938년 1월 27일 완공되었다.
또한 지심도 포대를 보호하기 위해 1936년 7월 8일 지심도 헌병분주소를 설치하고
총 4명의 인원을 배치하였다. 지심도 포대에는 일본군 1개 중대
약 1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포진지 4곳은 모두 원형으로 동일한 형태인데
직경 18m의 방호벽을 만들고 그 안에 직경 4m의 포대를 만들었다.
방호벽의 높이는 1.5m정도이고 남쪽과 북쪽에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심도 포대 4곳은 견고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현재도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 지심도 포대는 한반도 전역을
일제의 병참기지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포대, 동백섬이다보니
활용을 잘했더군요. 지금봐도 깔끔하니 만들어놨네요.



여러 가게들이 있지만 제일 깔끔한 카페 노란코끼리
풍광도 좋고 자리가 잘되어 있어 여성분들이 딱 좋아하실만 하더군요.
원형 길에서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위로 돌고 아래로 내려오며 들리면 좋을만 합니다.
전 아래에서 위로 돌아서 초입이라 들리진 않았네요.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는데 이 집도 일제시대의 것을 살려서
놔둔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심도 성수기에는 배시간이 정해져있어
빠르게 돌려다보니 내부를 못 본게 아쉬운데 지붕의 특징이라던지
전체적으로 제가 한국에서 봐왔던 일본 가옥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가슴아픈 일제의 건축물 중 하나이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남겨져서 특이한 관광상품 중 하나가 된다는게 묘합니다.



가격은 세트로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느낌?
다음엔 실내와 함께 편하니 쉬어보고 싶네요.



탄약고 주변에서 본 식빵굽는 고양이
따뜻한 양지에서 볕쬐는게 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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