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폴이라는 이름의 다섯 로봇, 5 Robots Named Paul by 타누키





폴이라는 이름의 다섯 로봇
5 Robots Named Paul
패트릭 트레셋(Patrick tresset)

이 작품은 작가가 개발한 자율적인 독립체이다.
관람객이 의자에 앉는 순간 폴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눈은 구식 디지털 카메라 혹은 화상카메라로
이루어져 있고 몸통은 책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은 오직 대상을 보고, 그 정보값을 움직임 값으로 변화시켜
그림 그리는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
이 로봇들이 그리는 방식이 작가의 기법에 의거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양식은 로봇들이 지닌
특성들에 의한 하나의 해석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전시가 계속되면서 전시장의 벽은 로봇 폴이 그린
개성있는 드로잉들로 가득 채워져 나가게 된다.
-안내문에서 발췌-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움직임으로 정적이었다가
휙휙 움직이는게 재밌더군요.
아마 일부러 그렇게 제작했을텐데
그렇기 때문에 자율적인 독립체보다는 뭔가 소품적인,
아직은 귀여운 맛이 있었습니다.
뭐 지금은 알파고로........




움직임이 재밌어서 동영상으로도~
후반가야 고개를 드네요. ㅎㅎ





그린 결과물들, 그리는데 오래 걸리기도 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보니 흔들려보이는게 많습니다. ㅎㅎ




전시 <로봇 에세이>는 근대 이후 예술 속에서 기계와 인간이
공유해왔던 꿈에 대한 기록이자 또 다른 가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백여 년 전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이 기계에 대해 가졌던 이상은
현재 안드로이드나 로봇 혹은 디지털 네트워크처럼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그들이 찬미했던 속도의 경이로움과
무한 확장 가능한 기계적 가능성은 비단 예술가의 상상력에
머물지 않고, 그 시대를 비판하고 시대와 함께 성장하였으며
새로운 미래적 정신을 제시하였다.

이제 우리는 기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인간과 기계의 공존상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 공존은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과 공포 모두를 제공하고 있다.
기술에 대한 이상은 삶의 이상(異常)을 유발하기도 하며
인간과 기술 이상(以上)의 어떤 가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 예술가들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 8명/팀은 기계적인 것, 로보틱스
미래사회 등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항을 탐구하는 그들은 매우 직접적으로
로보틱스에 대한 심미적 탐구를 역동적으로 가시화하기도 하며
인류가 기계와 로봇에 가졌던 꿈과 두려움을 이미지와
텍스트로 탐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계적 오류들에 대해서
기묘한 유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끊임없이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은 단지 또 다른 형으로서의
인간을 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술적 예견의 극단적 끝에 선 기계적 인간과
인간적 기계 사이의 고뇌는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이 전시에서 제시된 이같은 화두들은 기계라는 기술적 대상에
투영되어온 인간의 희망과 욕망 그리고 공포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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