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탑골공원 나들이 by 타누키





매번 바깥으로만 지나다니다가 안도 한번 둘러봤던~



탑골공원 팔각정
Palgakjeong Pavilion of Tapgol Park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3호, 1902년(광무6)

팔각정은 1902년(광무6)에 탑골공원 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다.
이곳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했던
건축가 심의석(1854~1924)이 주도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탑골공원은 서울에 만들어진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이 공원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이견이 있으나
189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이 공원은 고종 대 총세무사로
활약한 브라운(John Mcleavy Brown)이 건의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탑동공원, 파고다공원 등으로 불리다가
1991년부터 공식적으로 탑골공원이 되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사진으로만 보던 팔각정, 직접 보니 꽤나 크고 독특하네요.



원각사지 십층석탑
Ten-story stone pagoda of wongaksa temple site
국보 제2호, 1467년(세조13)

세조가 세운 원각사 터에 남아있는 높이 12m의 십층섭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 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세조13)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 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 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 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국보 제86호)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안내문에서 발췌-

예전엔 그냥 오픈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유리로 보호되어 있는~



훼손은 막아줄 것 같은데 가까이 보기엔 ㅎㅎ



대원각사비
보물 제3호, 1471년(성종2)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2)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11) 흥복사 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 이어 1467년(세조13)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하였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와 한 돌로 만들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당대 문장과 글씨로 이름난 사람들이 비문을 맡았다.

김수온이 앞면의 글을 짓고, 성임이 그 글을 썼으며
서거정이 뒷면의 글을 짓고, 정난종이 그 글을 썼다.

연산군 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근대에 들어 공원으로 변모한 이곳에는
십층석탑과 이 비석만 남아 원각사의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앞면~



뒷면~



발굴출토 우물
The Excavated Well

2001년 탑골공원 재정비(성역화) 사업으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시행한 시굴조사 때 발견된 우물 가운데 하나이다.
우물은 원통형으로 직경 1.3m이며 잔존 깊이는 5.2m에 달한다.
내부는 회색을 띤 직사각형 벽돌을 사용하여 면을 고르게 축조하였다.

발견 당시 우물 내부는 바닥까지 모래와 마사토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일시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에서 일본 동전과
상평통보, 일본산 맥주병 등이 발견되고, 벽돌이란 사용재료
그리고 축조방법으로 미뤄 조선말기(대한제국기)에 조성한 뒤
일제강점기까지 사용된 우물로 판단된다. 발굴조사 전에는
우물 상부에 보호용으로 추측되는 장대석으로 사각형 틀을 짜서
올려뒀었는데 수리하면서 지금 모습처럼 만들었다.

서울 4대문 안에서 민간용 우물이 발견된 사례가
드문 사정에 비출 때 이 우물은 조선후기 한양의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안내문에서 발췌-

민간용 우물이 드물다니 신기한~
청계천 등에서 물을 썼으려나요.



뒤쪽으론 근대 역사 부조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노인과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던~





덧글

  • 타마 2016/10/06 09:04 # 답글

    저도 한번도 들어가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주 주말 나들이는 저쪽으로...
    주변에 또 볼만한게 있나요?
  • 타누키 2016/10/06 12:31 #

    잘 모르지만 생각나는건 궁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시립미술관, 청계천정도네요. ㅎㅎ
  • 2016/10/06 15:3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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