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 돌담길의 시와 함께하는 밤산책 by 타누키






영화, 엄지용

너와 영화를 보러가면
나는 종종 스크린 대신 너를 보곤 했다

영화를 보는 너를 바라봤다

즐거운 장면을 보는 너는 어떤지
슬픈 장면을 보는 너는 어떤지
너는 매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그렇게 너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너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내겐 그 순간이 영화였다

언젠가 봤던 시였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참 좋았었는데...그래도 좋네요.
좋았던 시들을 올려봅니다.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가을 길, 박종해

어둡고 고단한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길가엔 갈대들이 목을 늘어뜨리고
참회의 흰 머리칼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대는 이 길 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요
나혼자 고달픈 길 위에서 날 저물도록 서있습니다.

저 산골짜기 후미진 곳
그대와 헤어져 돌아오던 날
부슬비는 온 종일 부슬부슬
내 두 볼엔 하염없이 눈물의 강이 흐르고
오리나무 숲도 강물에 젖어 있었습니다.

산비탈 밭고랑도 줄기줄기 강물이 되어
칭얼칭얼 흘러갔습니다.



벚나무가 여기까지 넘어와서 좋았던~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

이 숲이 누구 숲인지 알 것도 같다.
허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으니
내가 자기 숲에 눈 쌓이는 걸 보려고
여기 서 있음을 알지 못하리.

말은 방울을 흔들어 댄다.
뭐가 잘못됐느냐고 묻기나 하듯.
다른 소리라곤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와 솜털같은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5월, 김태인

저, 귀여운 햇살 보세요
애교떠는 강아지처럼
나뭇잎 핥고있네요

저, 엉뚱한 햇살 보세요
신명난 개구쟁이처럼
강물에서 미끄럼 타고있네요

저, 능청스런 햇살 보세요
토닥이며 잠재우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네요

저, 사랑스런 햇살 보세요
속살거리는 내친구처럼
내 가슴에 불지르네요



영화로 다시 끝, 바람에 벚꽃잎이 길을 가득 채운 야간산책이라 참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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