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자라섬 남도] 한국전쟁을 기리며, 우정의 호주공원 by 타누키





꽃 피는 한반도
한반도 지형을 1/180000로 축소하여 365평으로 조성하고 64000송이의
팬지와 데이지를 식재, 한단도의 정중앙인 64000명의 가평군민이
1년 365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의 염원을 담아 만들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자라섬 남도 꽃축제에서 안쪽까지 들어가니 우정의 호주공원이라고
전망대와 함께 조성된 곳이 있어 둘러보니 6.25와 관계되어 있더군요.
한반도 모양이라 기념 사진도 많이 찍고 좋아보이던~ ㅎㅎ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어 참 좋았습니다~





우정의 호주공원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인 경기도 가평군 일대의 가평전투에
참여한 영연방 제27여단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희생 정신을 기리고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 한반도에 잊혀져 가고 있는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며 가평 청년 4-H회원들이 참전국인 호주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랜드마크로 조성했다.

호주는 매년 4월 25일 현충일인 안작(ANZAC) 데이를 가평의 날로 지정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안작은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
(Austrai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앞글자를 딴 부대명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가평전투에 참가한 왕립 호주연대 3대대를 가평대대로
부르고 시드니의 한 도로를 가평거리로 명명했습니다. 호주와 가평군은
가평석을 호주로 보내 한국전쟁 참전비를 제작하였습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작지만 서로 교류하여 기념하는게 참 좋아보이더군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가며 점점 잊혀져가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고루하고 반감이
들게 배워온 시대다보니...



쿡 선장의 오두막
18세기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다. 태평양을 세 번이나 항해했고, 호주와 하와이 제도에
다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자필원고로 세계일주 항해일지를 남긴 항해사이자 지도 제작자이기도
하다. 영국 식민지 개척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로 호주 대륙에 발을 디딘
탐험가 쿡 선장의 집은 원래 영국 요크셔에 있었는데 1934년 멜버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호주 멜버른으로 옮겼다.
-안내문에서 발췌-

실제 사진과는 꽤 다르지만 ㅎㅎ



오페라 하우스 미니어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1957년 국제 콩쿠르에서 덴마크 출신 건축가
요른 웃손의 작품으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오렌지 껍질을 벗기는
과정에서 조개껍데기 모양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건물은 14년만인
1973년에 완공하였고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롤렉스 시드니-호바트 요트레이스
(Rolex Sydney to Hobart Yacht Race)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양 레이스 중 하나로 박싱 데이(12월 26일)에
시드니 하버에서 레이스를 시작하여 호주 이스트 코스트를 따라
태즈매니아까지 내려가 신년 전야로 이어지는 날에 호바트에 도착한다.
-안내문에서 발췌-

요트는 뭔가 했더니~





처음엔 코알라나 캥거루 등의 동물이 먼저 눈에 들어와 여긴 무엇을
주제로 만든건가~ 싶었네요. ㅎㅎ



가평전투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경기도 가평 일대에서 영연방 제27여단이
중국군과 벌인 전투이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반격에 나서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해갔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군의 개입으로 1950년 12월 다시 38선
이남 지역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을 포기하고
평택과 삼척을 잇는 북위 37도선까지 물러났다. 전열을 다시 정비하여
3월 15일에 서울을 탈환했으며, 4월에는 기존 38선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러자 중국군과 북한군은 70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5월 1일 이전에 서울을 다시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대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중국군이 춘천 사창리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의 방어선을 뚫고
남하해 오자 영연방 제27여단이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가평의 북면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했다.

가평군 북면 이곡리의 677고지에 캐나다 대대를 배치했으며, 목동리의
504고지에는 호주 대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영국군 1개 대대를 예비부대로
편성했다. 4월 23일 밤부터 중국군 제118사단이 가평 방면으로 접근해왔다.
그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호주대대의 504고지에
공격을 가했지만 고립된 상황에서도 진지를 사수하며 진격을 저지했다.
그리고 24일 날이 밝은 뒤에 중국군이 공격을 멈추고 물러나자 추격하여
40여명을 포로로 붙잡기도 했다. 그러나 호주대대는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포위될 위험이 있어 24일 영국군 대대의 후방으로 철수했다.
그러자 중국군은 그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캐나나 대대의 677고지
방면으로 집중공격을 가했지만 영연방 제27여단은 고지를 지켜냈다.
중국군은 사망자만 1천여 명에 이르는 손실을 입고 패퇴했다.

이 전투에서 호주 대대는 32명 전사, 3명 실종, 59명이 부상을 입었다.
캐나나 대대는 10명 전사, 23명 부상자가 발생했다. 미국 전차부대와
뉴질랜드 포병부대에도 5명의 전사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가평 전투에서 3일 동안 중국군의 남하를 저지하면서 유엔군은 북한강을
경계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정말 세계에서 참전한 미군과 유엔군의 활약은 참...



Freedom is not free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 입구의 문구로 많은 교류활동을
보여줘 좋았네요~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구글검색


www 내 블로그 검색

사이드1

사이드1.5

2019 대표이글루_음식

2018 대표이글루_photo

예스24

통계 위젯 (화이트)

140514
3607
5307722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99

메모장 드래그금지버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anngabriel.egloos.com의 저작물인 이 저작물은(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라이선스의 범위 이외의 이용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anngabriel.egloos.com을 참조하십시오. Locations of visitors to this page

사이드3

구글아날

구글아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