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없는 남자들 단편집에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버닝같이 영상화한 작품으로 잔잔한 듯하니 흘러가는 3시간이지만
너무 절절히 스며들어 시간 가는지 모르고 보게 되는 영화네요.
불륜과 죽음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먼저 돋보였지만 주제처럼 우직하니
우려내 마음에 들고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와닿는 면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연극과 함께 버무린 것이
신의 한수였네요.
아사코로 인상적이었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으로 6시간에
육박하는 해피아워도 개봉하였으니 같이 함께 진득한 그의 연출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연말이겠습니다.
이하부터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인인 오토(키리시마 레이카)는 섹스를 하며 오르가즘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지만 기억과 보완은 남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를 통해서
완성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를 병으로 잃었다는 설정이 나오다보니
어떻게 보면 이것이 이 둘의 아이이자 제일 큰 소통의 창구였구나 싶어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돌이켜 보면 처연한 씬들이었습니다.
키리시마 레이카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매혹적이면서도 미묘한,
어딘가로 훅하니 사라져버릴 듯한 느낌이라 좋았고 그렇게 되었네요.

너무나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부부로 나와 알콩달콩했는데~

하루 일정이 밀린 가후쿠가 집에 돌아와 보니 작가인 아내는 일전에
소개한 배우와 신나게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참...
넓고 넓은 주차장에서 범퍼 사이로 타이어를 집어넣는 주차실력을
보여주는게 인상적(?)이었는데 마침 짤방이 있길레 줍줍한ㅋㅋㅋ
가끔 저러기도 해서 동질감이~

결국 목격으로 인해 상실감은 배가 되고 그녀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유부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저녁에 얘기 좀 해를
시전하는데... 갑작스러운 지주막하출혈로 죽어버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해소되지 않은 감정에 연극 배우로서의
능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다 히로시마에서 연극 연출을 맡게 되었는데 전에 일어났던
배우의 차량 사고로 무조건 드라이버를 고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미사키(미우라 토코)가 그의 인생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연습법 같은 그녀의 태도와 기대서 쉬지 못하는
그의 태도에서 거리감이 극명하게 드러나 흥미로웠네요.
게다가 차량이 사브 900 터보인데 우리와 같은 좌측핸들이라 대체 왜~
운전이 어렵다 예상하는거지 했는데 일본이 우측핸들인걸 잊었던~
그래도 첫 운전부터 실수없이 해내는 미사키는 어딘가의 두부장수같은
실력의 보유자였는데 거기도 죽은 폭력적인 어머니의 일화가 있어
둘 다 상실을 겪은 사람으로서의 공감이 상당히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던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는 미성년자를 건드려
소속사에서 쫓겨났는데 가후쿠를 따라와 오토의 흔적을 느끼려는 듯해
참 두 남자 모두 오토의 징표가 찍혀있는게 슬펐네요.
또한 가후쿠와는 완성하지 못한 스토리를 다카츠키와 완성시키고
내가 죽였어를 연속할 때는 서로가 카메라를 죽일 듯이 바라보는게 와...
서로가 귀기어린 표정이라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카메라로 찍는걸
보복하는건 폭력정도고 오토를 진짜 죽인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네요.
하지만 미성년자 이야기가 나오고 그래서 그게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게
부인이 보는 눈이 참 없구나...싶기도 하고 그게 그의 매력이었고
가후쿠가 채워주지 못했던 부분이었던가 싶기도 하고... 미사키는 그것도
오토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었냐고 묻지만 아직은...싶었네요.
그렇지만 일견 점차 상대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에 대해 와닿는 바가
생기는게 어떻게 보면 서글퍼지는 대화들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극단을 만들고 지난한 실내 연습을 어느 날이 좋은 날엔
끝내게 되면서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실전하게 되는데 무미건조하게
일부러 진행한 실내 연습도, 오토가 녹음해준 테이프와 응답하는 것도
쌓이고 반복되는게 이상하게 너무 마음에 와닿아 슬퍼졌네요.
사실 체호프는 갈매기라던지 뭔가 스노비즘적인 이미지로 많이 쓰여서
초반에 나왔던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렇고 고전으로서의 기본이 아닌
부정적인 '또??'에 가까웠던 작가와 작품이었는데 이래서 고전이구나를
보여주는 반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다른 언어인데다 한국 수화까지로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연극이라 더 괜찮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주가 되지는 않아서 좋았네요. 가후쿠가 바냐로 돌아오게 되는 장치로도
괜찮았고~
부부인 공윤수(진대연)와 이유나(박유림)이라던지 류종의(안휘태)같은
한국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엔딩 로케이션도 한국이라 인상적이었네요.

특히 배경이 히로시마다보니 원폭도 살짝 언급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공원 정도부터는 미사키가 가후쿠를 끄집어 내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며
주인공이 요청하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따라 다니는 모습이
점점 따스해졌네요.

다카츠키가 사고를 치면서 가후쿠가 바냐를 맡아야만 하게 생겼는데
고민하는 이틀의 시간동안 미사키의 산사태로 무너진 집이 있는
홋카이도에 차로 다녀오기로 합니다. 동서 횡단은 한다는 느낌인걸
감으론 알았는데 네이버 지도의 자로 대충 찍어보니 1500Km는 되는게;;
안그래도 점차 앞좌석으로 앉기 시작했는데 속 깊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금연이었던 차에서 같이 담배를 태우는 모습은 참 좋았습니다.

오토는 한자론 音이라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란 제목 때문인지 처음부터
AUTO, 차라는 의미로 와닿아 붉은 사브는 오토 그 자체의 분신같은
느낌이라 운전을 맡기는 것부터,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것까지 흥미롭게
다가오는 오브제였습니다. 자신보다 능숙하고 아껴줄 수 있는데다
자심의 미련도 버릴 수 있게 되면서 미사키에게 넘겨준 것도 좋았구요.
거기에 캐릭터들 성격때문도 있긴 하지만 이 차에 타면 진실만 말한다는
느낌마저 주다보니 재밌었네요.

잃어서가 아니라 상대를 진실되게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진짜 상실이고 그러더라도, 그러지 않더라도 살아내야 하고
조용히 죽고 하늘로 올라가 고통받았다 이야기 하자는 연극의 장면과
함께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는 모습은 너무나 평범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반복과 반복으로 지난하게 쌓다보니 인간미가 느껴져 감동적이었네요.
내가 바라던 상대의 본질은 이미 잃은 것이니 과거가 과거로서 지나간
현실을 인정하고, 현재의 오토와 대화를 나눴어야한다는 것은
답답한 동양적 시각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인정하지 않는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각자는 각자만을 돌아볼 수 있을 뿐이니 슬프지만 어쩌다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 뿐, 나의 상대라 하더라도 타인은
타인이란걸 인정하는, 포기하는 것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네요.
처음엔 가후쿠의 우는 모습이 안어울리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 보면
아이처럼 모든걸 내려놓는 연기가 아니었나 합니다.
남 정도가 아니라 배경같은 존재였던 드라이버에서 진실된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된 둘의 모습은 참으로 부러우면서
딸의 나이와 같다는 대화에서 오토와의 연이 이렇게 닿는구나 싶었네요.
가후쿠는 바냐를 다시 연기할 수 있게 되었고 미사키는 볼의 상처를
치료 후, 이유나의 개와 SAAB 900 turbo를 타고 방향이 맞는 한국을
내달리는 모습이 모두 평안을 얻는 듯한 해피엔딩이라 좋았습니다.
개는 왜... 싶었는데 이유나도 이젠 일본에서 친구를 많이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닐지~
상실과 인정, 인간과 이해, 그리고 치유까지 조근조근하니 그려내
사람에 실망하고 사람을 포기하게 되지만 결국은 사람이 그리워져
마음에 드는 작품이네요.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