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옻골마을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 [옻골마을] 정침+저수지(0)2008.03.24
- [옻골마을] 백불고택+수구당+대묘+명문 기와(0)2008.03.23
- [옻골마을] 보본당+별묘+태극 화반(2)2008.03.21
- [옻골마을] 동계정+보본당 포사(6)2008.03.21
- [옻골마을] 최동집 나무+정려각+마을 풍경(0)200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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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옻골마을
- 2008/03/24 00:41
정침-안채경주최씨 종가의 안채로 건축된 ㄷ자 형의 고색창연한 이 건물은 대암 최동집 선생이 숭정3년, 1630년에 살림집으로지었는데,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의 특성을 고려해 사랑채와 함께 서쪽에 배치하였다.-팜플렛에서 발췌-나 혼자였다면 들어가 보진 못했을텐데..문화해설사 분이 이끌어 주셔서 들어갈 수 있었다.마을 분이셨는지 종가분들과도 이야기 하시고...
- ▷▶옻골마을
- 2008/03/23 22:26
종가조선 인조 때의 학자인 대암 최동집이 1616년(광해군 8) 옻골에 정착하면서 그의 손자인 최경함이1694년(숙종 20)에 건립한 것이다. 종가는 대구에 있는 조선시대 상류주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이 종가는 안채와 사랑채, 재실, 가묘, 별묘 등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시대 양반주택과 그 생활양식을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
- ▷▶옻골마을
- 2008/03/21 04:48
포사쪽에서 보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포사에서 여인들이 음식을 만들면 입구에서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음식을 받아서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그만큼 남녀를 유별하게 다뤘다고 하니...흠흠보본당백불암 최흥원 선생이 오대조이신 대암 선생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1753년(조선 영조 29년)에 건립하였으며부조위 사당과 재실, 음식을 장만하는 포사로 구성되어 있다...
- ▷▶옻골마을
- 2008/03/21 04:28
동계정 입구입구가 저렇게 들어가있는 이유는 길에 머슴이라던지 양반이 다니게 될텐데 입구에서 기다릴 때양반이 일반인과 같은 길에 서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오오..그런 뜻이..동계정종택 동쪽 개울가에 세워진 이 건물은 백불암 선생의 아들인 동계 최주진 선생의 학문을 기려 세운 정자로서자손들의 강학 장소로 이용되어 왔으며, 주변의 풍광이 마을에서 ...
- ▷▶옻골마을
- 2008/03/21 03:48
최동집 나무최동집의 호는 대암이며, 아버지 최계는 임진왜란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분이다. 한강 정구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광해군 8년에 이 곳 둔산동 칠계, 즉 옻골에 정착했다.효종이 대군으로 있을 때 스승으로 천거되었으나 중도에서 체임되고 명이 망하자 숭정처사를 자처하며 부인동에서은거하며 평생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고 주민을 교화했다.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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